[경상시론]왜 역사(歷史)가 문제일까?

2024-11-26     경상일보

역사를 놓고 벌이는 다툼을 보자면 답답하고 안타깝다. 무엇보다 대개는 출구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수일 전에도 지인들과 대화하면서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들은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을 말하면서 자신과 의견이 다른 상대를 ‘좌파’ ‘친북’ 혹은 ‘우파’ ‘친일파’로 몰아붙였다. 자신의 주장이 ‘객관적으로’ 옳다고 강변하면서.

그런 상황이면 난감한 교통정리는 필자의 몫이 된다. 역사 정보를 비교적 많이 접해왔고 고민 또한 깊다는 점을 모두 인정하기 때문이다. 물론 평균적 시민이 제한적 역사 정보나 특정한 신념에 기초하여 나름의 논평을 한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전혀 없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늘 남았다. 내친김에 민주 시민이라면 누구든 한 번쯤 고민해 주었으면 하는 평소의 소견을 두 가지로 간추려 얘기하고 싶다.

하나는 객관적 역사는 가능한가? 이다. 언뜻 들으면 당연히 그렇지 싶다. 하지만 문제가 그리 간단치 않다. 객관 개념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세계관, 역사 인식, 가치와 태도, 정치적 주장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대로부터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실에 대한 제한적이고 편견적인 ‘주관적’ 시각을 배척하고, 정확하고 중립적인 ‘객관적’ 시각을 추구한 것이다. 특히 19세기 유럽에서는 100% 객관적 역사서술이 가능하다는 신념 속에서 정확, 초연, 순결 등 가치 중립적 태도를 중요하게 여겼다. ‘있었던 그대로의 역사’ ‘이념은 역사에서 폭력이다’ ‘역사를 쓰는 것은 내가 아니라 역사가 나를 통해 역사를 쓴다’ 등은 그런 분위기를 반영한 주장들이다. 말하자면 사실에 대한 해석은 오직 하나(one)라는 믿음이다.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그런 인식에 붙잡힌 자들이 상당하다.

그러나 19세기 말부터 그런 비현실적이고 이상적인 주장은 상대주의자들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그 바탕에는 ‘인간은 자신이 뿜어낸 의미의 그물망 가운데 고정되어있는 거미와 같은 존재다’라는, 사회와 문화에 구속된 존재로서 인간의 인식 능력의 한계에 대한 자각이 있었다. ‘모든 역사는 현대사다’ ‘역사는 신념의 행위다’ 등 주장은 사실에 대한 해석이 여럿 일 수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그들에게 객관은 ‘실재와 일치하는 진실이 있다는 믿음’이었으며 과거-현재-미래의 흐름 속에서 어떤 ‘의미’를 찾는 일이었다. 오늘날 시민 다수가 받아들이는 해석의 다양성은 그렇게 담보되었다.

다른 하나는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 이다. 20세기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좌우의 온갖 거대담론과 가치체계가 흔들리고 서구 문명에 대한 비판이 전 지구를 휩쓸었다. 소위 포스트모던 역사학은 그런 환경에서 태어났다. ‘역사적 실재를 재현한다는 주장은 허구다’ ‘역사는 하나의 담론적 구성물이다’ 등 주장은 사실에 대한 해석이 하나이든 여럿이든 해석이 사실의 함수(函數)라는 점 자체의 부정이었다. 달리 말하면 역사 텍스트의 해체적 읽기를 통해 사실을 생산하려는 시도였다. 이제 역사는 하나의 담론이며 ‘해석에 대한 해석’으로 이해된 것이다.

그 결과 전통적 역사 관념의 힘은 크게 위축되었다. 역사의 추동력 또한 과거처럼 신, 이성, 개인, 사회가 아니라 담론으로 인식되었다. 담론은 인간 경험을 체계적으로 조직하고, 지식 양식을 구성하며, 어떤 지식이 진리이고 허위인지 가려내는 기준을 제공한다. 다시 말해 담론은 정체성을 만들고 현실을 설명해준다. 그래서 담론으로서 역사는 특정 계급 혹은 집단이 과거를 전유하면서 삶의 지향점을 구성하는 수단이게 된다.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역사전쟁’은 그러한 역사연구의 추이와 논리적 사실적 궤를 같이하고 있다.

역사는 넓게 보면 집단적 경험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료라는 ‘흔적’으로 보전되며 그것도 ‘선택’되고 ‘기억’된 것 중 일부만이 현실적 역사가 된다. 누가 어떤 자료를 왜 선택하고 어떻게 기억하고자 하는지를 제한하는 것은 문화이고 담론이라고 한다. 사실은 무대 뒤로 퇴장하고 해석들이 활극을 벌이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이유이다. 하지만 ‘목욕물을 버리려다 아기까지 버리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하듯이, 역사의 절대 기준은 사실(fact) 자체라는 점을 놓쳐선 안 된다. 정확한 논리와 명백한 사실에 근거하지 않고 특정 집단을 위해 복무하려는 역사는 이미 역사가 아니다. 역사는 ‘상상력의 경계를 확장하고 과거와 현재에 대한 편협한 사고를 줄이는데’ 이바지해야 한다.

김정배 전 울산문화재단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