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곤의 살며 생각하며(57)]내려가는 길

2024-11-27     경상일보

한 해 농사가 끝나는 가을이 되면 자연의 풍경도 바뀌지만, 마음속의 시간도 흐름이 빨라진다. 나무와 풀들이 저마다의 색깔로 잎들을 내려놓는 계절이 오면 우리의 일상에도 작은 매듭을 지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시작한 일들을 마무리하는 자연의 모습을 눈으로 느끼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어느 계절이나 저마다의 모습이 있지만, 가을은 지난 시간을 돌아보게 하는 서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푸른 나뭇잎이 저마다의 색깔로 변하듯이 가을의 정서도 사람마다 다르다. 단풍의 화려한 색조를 찾아 여행을 떠나는 사람도 있지만 길 위에 떨어진 낙엽을 보며 자신 속으로 침잠하는 사람도 많다. 푸르름이 사라지는 계절에는 기쁨이나 들뜸보다는 고독이나 쓸쓸함과 같은 정서가 더 깊은 울림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시나 노래에도 계절의 정서가 담겨 있어서 가을에 부르면 더 어울리는 노래가 있다. 잎이 지기 시작할 무렵 가을 노래 한 곡을 휴대폰 편지로 받았다. 한동안 소식이 뜸하던 친구가 보낸 박인희의 노래였다. ‘길가에 가로수 옷을 벗으면 떨어지는 잎새 위에 어리는 얼굴’로 시작되는 노래는 말이나 글보다 더 깊은 소식을 전해주는 편지였다. 청아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던 가수는 이미 노인이 되었지만, 그 노래는 오랜 세월을 지나서도 우리의 가을 정서를 움직이는 생명력을 잃지 않고 있었다.

생애의 끝자락인 노년이 되면서 점점 더 깊은 느낌으로 다가오는 노래도 있다. 양희은이 부른 ‘한계령’이라는 곡도 그런 노래 중의 하나다. ‘저 산은 내게 우지 마라 우지 마라 하고, 발 아래 젖은 계곡 첩첩산중/ 저 산은 내게 잊어라, 잊어버리라 하고’. 혼자 산길을 걷다가 흥얼거려 보면 삶의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진 것 같은 위로를 느낀다. 이 노래의 끝 소절도 세상으로 향하는 마음을 이제는 조금씩 거두어들이라고 에둘러서 이야기하는 것 같다.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현역에서 은퇴한 사람들 사이의 대화에서 자주 듣게 되는 말이 ‘다 내려놓아야 한다’는 조언이다. 한계령의 노랫말처럼 들고 있는 것을 내려놓아야 남은 삶을 잘 살아낼 수 있다는 뜻이다.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지혜이지만 일상에서 실천하는 방법과 경험하는 수준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어느 나이가 되면 누구나 경험하는 평범한 세상사도 때로는 더없이 힘든 일임을 알게 된다. 그래서 작은 기대나 바람조차도 내려놓아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게 된다. 장성해서도 직장을 구하지 못해 힘들어하는 자녀를 지켜보는 부모의 안타까움을 내려놓아야 한다. 나이 사십이 다 되도록 결혼하지 않는 자녀를 둔 부모의 근심도 내려놓아야 한다. 서둘러 세상을 떠난 가족에 대한 슬픔조차도 내려놓아야 한다. 모두 힘들고 또 힘든 일이다.

그러나 이런 일들이 실업률이나 혼인율과 같은 통계 속의 먼 이야기라면 그나마 걱정이 덜할 것이다. 그러나 누구나 주위에서 흔히 보고 경험하는 것이 현실이다. 몇 명도 되지 않는 술친구들과의 대화를 무겁게 하는 주제들이기도 하다. 내려놓으라는 말은 삶에 필요한 현명한 지혜이지만 종교적 깨달음이 있어야 가능한 아득한 지혜라는 생각도 든다.

양희은이 부른 노래 한계령의 노랫말은 어느 시인의 시라고 한다. 시인은 우리의 삶이, 우리의 마음이 너무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라고 한다. 그리고 푸르던 잎이 가을에 땅 위로 떨어지듯이 낮은 곳으로 내려가라고 한다. 해발 1000m의 한계령에서 내려가는 길은 여러 방향으로 나 있을 것이다. 또 산은 오르기보다 내려오기가 더 쉽고 편하다.

그러나 시인이 권유하듯이 집착을 벗어나 마음의 평지로 내려가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때가 되면 스스로 내려갈 힘을 가져야 한다고 누구나 생각한다. 아직도 내려놓지 못한 짐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면서 늦은 가을 산을 걷는다.

김상곤 칼럼니스트 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