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정보는 도구다

2024-11-27     경상일보

어린 시절 친구 집에 갔다가 책꽂이에 꽂혀 있던 백과사전을 보고 부러워했던 기억이 있다. 언제든 모르는 개념을 찾아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백과사전과 AI는 무엇이 다를까?

얼마 전까지 택시를 타기 위해 전화로 호출했다. 또는 길가에서 지나가는 택시를 막연히 잡아야 했다. 기사도 마찬가지였다. 승객을 찾기 위해 무작정 도로를 주행했다. 지금 우리는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한다. 앱을 사용함으로써 기사도 승객도 시간을 허비할 수밖에 없었던 불확실성이 제거됐다. 전화와 전용 앱은 무엇이 다른가?

인류는 직립보행을 하면서 자유로워진 두 손으로 창조적 시도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것이 ‘도구 제작’의 시작이었다. 최초로 만든 도구는 ‘석기’였다. 편리했다. 그런데 볼품없었다. 그러나 아무 것도 아닌 일이 아니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해낸 인간의 첫 번째 혁신이었다.

프랑스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1859년~1941년)은 인류에 대해 호모 파베르(Homo Faber)라는 이름을 만들었다고 한다. 호모 파베르(Homo Faber)는 물질적인 도구뿐 아니라 비물질적인 도구를 만드는 동시에 만든 도구를 사용해서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바꾸고 나아가 자기 자신을 새로운 존재로 창조해낸다는 뜻이라고 한다.

인간은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존재이다. 인간이 만든 모든 것들은 자연의 한 종에 지나지 않는 인간의 생존 전략이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가 만든 도구들 속에 있다. 자동차, 컴퓨터, TV, 휴대폰, 도로, 건축, 옷, 음식, 온갖 서비스, 무형의 정보와 지식에 둘러싸여 있다.

지식도 도구다. 지식을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실체로 인식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더 이상 지식을 절대적이거나 객관적인 실체로 인식하지 않는 인식의 전환이 있었다. 학교 교육과정이 사회적 정치적 산물이라는 사회학자들의 대두로 1970년대 영국을 비롯해 신교육사회학이 발전했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교육 내용이 누구의 이익에 기여하는지에 대한 물음으로부터 지식의 상대성에 대한 인식이 공유됐다. 나아가 구성주의의 등장으로 지식의 상대성이 일반화됐다. 구성주의는 지식이 주관적이며 학습자가 스스로 ‘구성’해 나간다는 관점이다. 지식에 대한 도구적 통찰의 역사다.

현재 인류가 만든 가장 혁신적인 도구는 AI다. 콘텐츠 작성, 요약, 코딩, 이미지 생성, 고객 서비스, 채용, 노트 필기 등 검색 엔진을 통해서 검색, 분석, 생산하던 일들은 이제 AI를 활용한다. 지금은 AI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느냐가 문제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정보도 유용한 도구일 뿐이기 때문이다.

학교는 유용한 지식을 가르치며 삶의 도구를 충분히 활용할 수 있도록 교육해왔다. 언제나 그랬듯 학교는 달라진 시대에 필요한 교육에 다시 집중해야 한다.

이현국 학성고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