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수 칼럼]윤정부 하산(下山)길 안전 매뉴얼은 있나

2024-12-02     김두수 기자

한라산에서 연평균 1500건 안팎의 안전사고가 일어난다. 이 가운데 ‘하산(下山)길’ 사고가 80~85%를 차지한 것으로 국립공원관리소가 밝힌 적 있다. 등산에서 하산길 위험과 권부의 임기 반환점 하산길 위험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헌정사에서 하산길 초대형 사고를 당한 대통령은 박근혜다. 2013년 2월25일부터 2017년 3월10일까지 재임했던 박 대통령은 임기 반환점에 돌아선 2016년 10월부터 불길한 징조가 곳곳에서 나타난다. 최순실 태블릿 언론보도를 기점으로 하야와 탄핵 키워드가 실시간 검색어에 올라오면서 결국 6개월을 버티지 못했다.

신군부 전두환 정권에 이어 바통을 받은 노태우 정권 역시 각종 권력 스캔들로 나라를 뒤흔들었다. 심지어 문민정부 간판을 내건 YS(김영삼)에 이어 국민의정부 DJ(김대중) 역시 ‘대통령 아들들’의 국정농단으로 권력스캔들을 피해 가진 못했다. 노무현 정부와 MB(이명박) 정부, 문재인 정부 역시 하산길에서 각종 스캔들과 맞닥뜨리면서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렇다면 지난달 11일부터 임기 반환점에 돌아선 윤석열 대통령의 하산길 안전 매뉴얼은 과연 무엇인가?

대통령실 주변에선 다양한 얘기들이 나온다. 임기 후반부 국무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과 대통령실까지도 전면 개편작업을 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하산길 안전 매뉴얼이 가능할까.

심각하리 만큼 격화되는 당정 간 불협화음, 당 내부 친윤(친윤석열)·친한(친한동훈) 계파 갈등이 정점으로 치닫고 있다. 국정의 우선순위조차 뒤엉켜 있는 형국이다. 여권 내 감정싸움으로 치닫는 끝장 대결. ‘당게’(당원 게시판) 전쟁으로 옮겨붙으며 급기야 ‘김건희 여사 특검법’과 연계 논란으로 확전되는 양상이다. 이런 판국에도 양측의 날 선 대립각의 이면도 예사롭지 않다. 친윤 입장에선 친한을 윤 정부의 방해세력으로 간주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반대로 친한은 친윤측이 어떤 구실을 내세워서라도 한동훈을 내칠 것이라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는 얘기다. 하산길 발을 헛딛는 순간 공멸이 눈앞에 다가왔는데도 상호 간의 공격은 멈추지 않는다. 이 지점에서 윤 정부 하산길에서 안전 매뉴얼은 과연 무엇일까.

첫째는 108석 국민의힘 동력이다. 윤 정부를 뒷받침하는 여당의 균열은 곧바로 적전분열을 초래한다. 작금이 바로 그렇다.

둘째는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용산의 혁신적 인사다. 대통령이 친애하는 인사들보다 정국을 꿰뚫고 올바른 길로 관통할 수 있는 ‘검증된 선수’들을 전진 배치해야 한다. 의총에서 합의한 특별감찰관을 당대 최고의 칼잡이로 배치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셋째는 국무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들의 새판짜기다. 용산의 이른바 거수기형 스타일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실물 정책을 펼칠 수 있는 프로급으로 라인업을 해야 한다.

당·정·대의 이러한 3각 편대가 제대로 이뤄지면 윤 정부는 오직 민생에만 올인해야 한다. 대통령실과 집권당의 선장인 한동훈은 국정운영의 쌍두마차다. 하산길 한쪽 수레바퀴가 빠지거나 부서지는 순간 여권은 낭떠러지로 추락할 수도 있다. 더욱이 191석의 거대 야권은 윤 정부의 임기 단축론을 펼치며 전방위 장외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윤 정부에 대한 최근 국민 여론도 지난달에 이어 다시 19%(한국갤럽)로 추락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작금의 여권 내부 당정 간 이상기류가 말끔히 정리될 것 같지는 않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물과 기름과도 같은 용산과 한동훈은 최근 잠시 휴전상태에서 숨 고르기에 들어간 모양새다. 국회 의사일정에 따라 오는 10일(김건희 여사 특검법 처리)은 여권에 폭탄이 떨어질 수도 있는 최대의 위기를 앞두고서다. 만일 김 여사 특검이 예상을 뒤엎고 처리되는 순간 여권은 판이 깨질 수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양측은 속 시원히 “전쟁은 절대 없다”라고 못 박지 않는다. 하산길 빙판 위에서도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는 셈이다. 앞으로 남은 일정은 여권의 향후 국정운영에 큰 변수가 될 것이다. 화학적 신뢰의 공간을 마련하지 못하면 이후 안전 매뉴얼은 ‘있으나 마나’라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김두수 서울본부장 dusoo@ks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