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혁의 유유자적(7·끝)]영남알프스와 야외교육

2024-12-03     경상일보

‘학비만 7억…배우 이시영 6세 아들 다니는 귀족학교 어디?’라는 기사가 근자에 주요 언론들에 게재되었다. 일년 학비가 약 5000만원인데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14년간 7억원이 든다면서 ‘한국인 금수저 전용 귀족학교’라고 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딸이 해당 학교 출신이고 연예계에서는 배우 전지현과 방송인 현영의 자녀가 재학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기사에 언급된 채드윅송도국제학교(Chadwick International)가 울산과 맺고 있는 인연이 생각났다. 작년에 배내골에 사는 지인이 ‘외국인 학교학생들이 영남알프스 산자락에서 야영을 한다’고 했다. 금년 9월에는 이천리개발위원회와 이 학교가 ‘영남알프스 산악관광자원 공동활용 업무 협의서’를 맺었다기에 직접 가서 야영활동을 살펴 볼 기회가 있었다.

미국 사학 명문인 채드윅학교(Chadwick School)는 마가렛 채드윅이 전인교육에 중점을 둔 교육철학을 바탕으로 미국 로스앤젤러스 외곽에 1935년 개교한 비영리 사립학교로서 유치원에서 고등학교까지 과정을 담당하는 남녀공학이다. 학교의 웹사이트에 의하면 전체 학생수는 863명이며 학생과 교사의 비율은 8대1 이다.

인천의 송도캠퍼스는 첫번째 해외 캠퍼스로 2010년 9월에 개교했는데 현재 학생수는 1428명이다. 2022~2023학년도 기준으로 학생들의 국적은 51개국이며 한국 학생의 비중이 59%이고 미국 학생이 24%였다.

이 학교의 야외교육(OE: Outdoor Education)은 설립자의 교육철학을 실행하기 위한 핵심 커리큐럼으로 전교생은 필수적으로 이수해야 한다. 유치부부터 초등부 3학년까지는 OE 교사와 자연에서 하루를 보내고 4학년에서 12학년까지는 자연에서 1박2일에서 9박10일로 점차 확대된다. OE의 미션은 아웃도어 기술을 단계적으로 숙달함에 따라 자아의식과 장소에 대한 감각을 키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영남알프스에는 9학년과 10학년이 9월과 10월에 4박5일 일정으로 배낭여행을 온다. 개인소지품과 텐트 및 침구 등을 각자가 매고 다녀야 하기에 배낭의 무게가 꽤 된다. 내가 던진 주요 질문은 야영 중에 샤워와 화장실을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었다. 샤워는 할 수 없기에 물티슈와 비누를 제공하고 화장실은 근처에 없을 경우 자연에서 각자 처리해야 한다. 게다가 얇은 스폰지형 매트리스를 땅에 깔고 자는 불편함은 소위 말하는 금수저 귀족학교 학생들에게는 평생 잊을 수 없는 경험이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OE 목표 중 하나인 ‘다양한 실생활 상황에서 아웃도어 기술 및 지식 적용’에 해당한다. OE 프로그램의 말미에는 몇 시간을 홀로 지내는 솔로(Solo) 시간이 있어 각자가 자연 속에서 사색하는 기회를 가지게 하는 것도 특이하다.

안도현 시인은 ‘무식한 놈’이란 시에서 ‘쑥부쟁이와 구절초도 구별하지 못하는 자신을 나무란다. 예전에는 야생화의 이름을 많이 알면 ‘유식한 놈’에 속했지만 요즘은 검색을 하면 금방 알 수 있다. 야외학습에서 조차도 암기식 정답 찾기 위주인 현행교육은 질문을 잘하는 창의적 인재가 필요한 AI시대에는 부적절하다. AI시대를 대비한다는 거창한 명분은 아닐지라도 전인교육이라는 기본에 충실하기 위해라도 채드윅학교의 OE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울산에서 이 같은 OE를 한다면 ‘지역에 대한 애착심 제고’라는 목표를 추가하면 좋겠다. ‘지역에 대한 애착심 부족’도 젊은이들이 외지로 가는 이유 중 하나이다. 부모세대와는 달리 아파트에서 자라서 학교에서 공부만 하는 학생들에게 지역에 대한 애착심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필자가 포스텍에 특임교수로 재직할 때 포스텍 학생들의 지역문화 탐방 프로그램을 담당한 적이 있었다. 대부분 외지에서 온 학생들이 학교에서 공부만 하다가 떠나가므로 포항에 대한 인식을 제고해 애착심을 조금이라도 배양하려는 취지다. 아는 것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중고생 뿐만 아니라 대학생들에게도 OE를 통해 지역에 대한 애착심을 배양할 필요가 있다.

임진혁 유니스트 명예교수 전 울산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