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생각]화려한 순간이 아닌 성실한 과정

2024-12-05     경상일보

어느덧 12월이다. 한 해 동안 수많은 전시와 공연, 예술 활동이 이루어졌다. 필자 역시 다양한 분야의 예술인들과 많은 일을 했다. 때로는 기획자로, 때로는 작가로, 때로는 단순 기록자로 여러 가지 역할을 맡으며 예술 현장에 참여한 1년이었다. 반짝이는 조명 아래에서 작품으로 관람객과 만나는 순간이 예술인들이 가장 주목받고 박수받는 시간일 것이다. 하지만 관람객이 만나는 그 화려한 순간이 예술의 전부인 걸까?

사실, 우아한 상태의 예술인들과 관람객들이 만나는 시간은 예술 활동의 전체 과정에서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대중은 종종 예술가들이 갑작스러운 영감으로 단숨에 작품을 완성하거나, 한순간의 열정으로 무대에 서는 모습을 상상하기도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대부분의 예술가는 ‘예술노동자’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릴 정도로 모든 과정을 직접 발로 뛰며 작품을 완성한다.

필자가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던 예술 현장에서 지켜본 작업 과정은 매번 예상할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이었다. 예술인들의 역할은 작품을 만들어 내는 창작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치열한 눈치싸움이 필요한 공간 대관부터 난관이 시작되고, 장소와 일정이 확정되면 홍보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전시나 공연이 다가오면 작품을 발표 공간으로 옮기고 무대 소품까지 세심하게 챙겨야 한다. 전시의 경우에는 작품의 위치, 이름표 하나까지 세심히 고려해야 하며, 공연에서는 소품을 놓는 위치까지 꼼꼼히 점검하며 리허설을 반복한다. 현장에 도착한 후에는 예기치 못한 변수에 대응하기 위해 플랜 B, C, 심지어 D까지 준비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은 관객을 맞이하기 직전까지 계속된다. 보편적인 예술 현장에서 예술인들은 결국 모든 과정에서 스스로 예술 총감독이 되어 움직여야 하는 것이다.

최근 개인 무용가의 무대를 기록할 일이 있었다. 무대 위에서 그의 모습은 더할 나위 없이 우아하고 멋있었다. 하지만 무대 뒤에서 본 그는 리허설 때 사용한 소품 중 하나인 다져진 양배추 조각을 하나하나 주워 담고 있었다. 흔히들 생각하는 화려하고 우아한 예술인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지 않은가. 누군가는 약간의 재능으로 조명 아래에서 박수받는 예술인들의 생활을 부러워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조명이 꺼진 때의 예술인들은 대부분의 사람과 같이 치열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현대의 예술인이 가져야 하는 가장 큰 재능은 성실함과 꾸준함인 듯하다. 순간적인 자기표현만 할 줄 아는 예술가의 생명은 길지 않기 때문이다.

올 한해 문화현장에서 활동한 예술가는 물론, 관련 업계 종사자와 행정가들의 수고에 박수를 보낸다. 특히 현장에서 만난 관람객들에게 가장 큰 감사 인사를 전한다. 내년에도 무대 앞뒤를 가리지 않을 예술인들의 노력과 관람객들의 애정 어린 응원으로 교감할 수 있기를 바란다.

김지영 울산젊은사진가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