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숙 시인의 월요시담(詩談)]허연 ‘절창’
마신 물이 다 눈물이 되는 것은 아니므로.
늦은 지하철 안에서 깊은 신음소리가 들렸다. 휠체어에 앉은 남자가 포유류가 낼 수 있는 가장 깊은 소리로 신음하고 있었다. 경전 같은 소리였다. 절박하고 깊은…태초의 소리였다. 삶을 관통한 어떤 소리가 있다면 저것일까. 일순 부끄러웠다. 나는 신음할 일이 없었거나 신음을 감추었거나. 신음 한번 제대로 못 냈거나…그렇게 살았던 것이었다. 나는 완성이 아니었구나. 내게 절창은 없었다. 이제 내 삶을 뒤흔들지 않은 것들에게 붙여줄 이름은 없다. 내게 와서 나를 흔들지 않은 것들은 모두 무명이다. 나를 흔들지 않은 것들을 위해선 노래하지 않겠다. 적어도 이 생엔.
절실하지 못한 지난 날에 대한 반성
포유류가 낼 수 있는 가장 깊은 소리란 어떤 것일까. 팔려가는 소의 울음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죽음을 예감한 소가 저 폐부 깊숙한 곳에서 끌어올린 소리. 송아지와 떨어지는 어미 소의 울음소리라면 더욱 그러하리라.
그런데 지하철 안에서 이런 절망의 신음소리를 내는 이는 누구인가. 휠체어에 앉은 걸 보면 사고로 삶이 무너져내린 남자 같다. 삶을 관통한 소리라니. 그건 죽음과 닿았다는 것이고, 적어도 죽음의 얼굴을 엿본 자의 신음이다. 그만큼 처절하고 절박한 소리이다. 시인은 이런 소리를 내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 부끄러워한다. 간절하게, 절실하게 살아오지 못한 삶에 대한 부끄러움이요 반성이다.
절창이란 사람의 마음을 뒤흔드는 뛰어난 노래를 말한다. 시인은 자신을 뒤흔들지 않은 것은 ‘이름’이 없다고 하였다. 이름은 존재의 표명이니 이름이 없다는 것, 무명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은 것, 살아있되 살아있지 않은, 즉 간절히 살지 않은 것이다. 그러고 보니 절창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송은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