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문학과 운명론
인생의 행로(行路)와 경험을 탐구하고 이해하는 바탕을 문학과 운명론에서 찾을 수 있다. 문학은 인간의 삶, 감정, 사회적 관계를 언어를 통해 나타내며, 독자에게 다양한 체험과 교훈을 제공한다. 운명론은 인간의 생애(生涯)와 인연이 정해져 있다는 믿음을 기반으로 하며, 개인의 선택과 자유의지가 제한적이라고 보는 관점이다.
이러한 시각은 문학 작품에서 자주 다루어지는 내용으로 작품 속 인물의 생을 널리 사고(思考)하는 데 도움이 된다.
운명론은 고대부터 존재해 온 철학적 개념으로, 사람의 목숨과 사건이 결정되어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는 그리스 신화에서 모이라이(Moirai, 운명의 여신들)가 인간이 가진 운명의 실을 짜고 끊는 것으로 상징되며, 고대 그리스 비극의 본질적인 연구 대상으로 개인은 운명의 틀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수많은 문학 작품에서 다루어져 왔으며, 인물들의 생과 경로(經路)를 살피며 존재의 본질을 성찰하게 한다.
문학에서 운명론은 사람들의 행동과 사건의 전개를 파악하는 데 조력이 된다. 셰익스피어의 <오이디푸스 왕>은 대표적인 사례로,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운명을 피하려 하지만 끝내 예언된 대로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게 되는 비극적인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작품은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불가피성을 강조하며, 인간의 무력감을 드러낸다. 오이디푸스의 내용은 운명론적 주제가 어떻게 개인의 선택과 자유의지를 한계 짓는지를 보여주며, 독자에게 존재의 본질에 대한 사고를 유도한다.
또한, 운명론은 문학에서 인물의 내면 갈등과 성장을 연구하는 도구로 사용된다. 러시아 문학의 거장인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은 주인공 라스콜니코프가 자신의 생을 거스르려고 하지만, 결국 자기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운명과 화해하게 되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라스콜니코프의 이야기는 결정론적 요소를 통해 내면적 갈등과 도덕적 성장 과정을 심도 있게 탐구하며, 인간이 운명과의 대립에서 스스로 본질을 찾아가는 여정을 보여준다.
현대 문학에서도 운명론은 여전히 주된 논제로 다루어지고 있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 년 동안의 고독>은 부엔디아 가문의 일대기에서 벗어날 수 없는 고독과 반복되는 내력의 패턴을 나타내고 있다. 작품은 운명론적 관점에서 인간으로서 갖는 욕망, 외로움과 역사적 반복성, 그리고 그곳에 흐르는 개인의 무력감을 탐구하며, 운명과 인간의 상호관계를 문학적으로 풀어낸다.
문학에서 운명론은 자신의 선택이나 판단 그리고 자유의지에 대한 고찰을 가능하게 한다. 사르트르의 <구토>는 실존주의적 관점에서 자유와 운명론을 탐구하며, 사람은 스스로 운명을 개척할 수 있음을 역설한다. 작품은 주어진 환경적 제약을 넘어서고자 하는 인물의 주력(注力)을 보여준다.
문학에서 운명론을 탐독하면 인생(人生)을 폭넓게 돌아보고, 운명과 의도의 연관성을 사색(思索)하게 된다. 문학은 이러한 제목에서 존재의 복잡성을 드러내고, 독자에게 생각과 행동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운명론적 시각은 문학 속 인물들의 선택과 행로에 대한 이해를 돕고, 그들과의 교류에서 심리적 영향은 물론 본질에 대한 통찰력을 갖게 한다.
살아있는 세월 동안 각자의 생과 인연 그리고 존재의 의미를 사유(思惟)하게 하는 것이 문학이다. 운명론적 논제에서 시간의 선정과 내적 자유, 그리고 생사의 불가피성을 탐구하는 것도 문학이다. 이것은 세상에서 자신을 성찰하는 계기를 마련해주고 어려운 상황을 신중하게 이겨나가는데 현명한 조력자가 될 수 있다. 문학은 바로 우리의 노정에서 직접 겪게 되는 감정과 복잡한 체험의 집합체이다. 내일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그저 조심하고 대비하는 것뿐이다. 내일에 대한 지나친 걱정은 오늘을 잃을 수도 있다. 세상사 모든 것이 인과관계(因果關係)로 얽혀있다. 운명은 자신도 모르게 걸어왔다가 걸어가야 하는 길이다. 마주친 인연을 엮으며 나아가는 것이 운명이자 문학이다. 문학이 현실에서 태어나듯 현실은 우리가 매일 부딪혀야 하는 운명이다.
김진 김진명리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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