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도시 첨병 - 울산문화예술인]“문학·서예 등 전시할 복합전시관 확충을”

2024-12-16     차형석 기자
문화예술계에서는 한 가지를 넘어 두 개 이상의 분야에서 재능을 뽐내고 활동하는 문화예술인들이 적지 않다. 울산 원로 서예가인 정도영(69) 울산서화예술진흥회 회장은 몇 년 전부터는 시조시인으로도 활발히 활동을 하며 서예가에서 문인으로 활동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공직사회에 몸 담다가 서예가로, 다시 시조시인으로 인생 3막을 열어가고 있다.



◇공무원에서 서예가, 시조시인으로

지난 4일 찾은 남구 신정동 울산서화예술진흥회 사무실. 이곳은 정도영 서예가의 개인 사무실이자 문하생들에게 서예를 가르치는 서실이다. 이날도 정 서예가의 문하생들이 서예 연습에 한창이었다. 정 서예가는 옥동 가족문화센터에서 오전 서예 수업을 마친 뒤 이곳으로 와 문하생들과 시간을 보냈다.

서실은 오랜 서예가로서의 이력을 보여주듯 곳곳에 그의 작품이 내걸려 있었고, 각종 상패와 상장, 고서(古書) 등도 책장에 빼곡히 전시돼 있었다.

눈에 띄는 것은 어림잡아 1000장 이상 돼 보이는 옛날 LP와 카세트테이프, 턴테이블(LP재생장치). 사무실 벽 한 켠이 LP로 채워져 있을 정도였다.

정 서예가는 “음악 듣는 것을 좋아해서 젊은 시절부터 LP를 모으기 시작했다. 음악다방 같은 곳에도 많이 기증했다”며 “남목의 서실에는 이보다 더 많이 있지 싶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가 처음부터 서예가의 길을 간 것은 아니었다. 경남 합천에서 태어난 정 서예가는 1979년 공무원으로 공직에 입문했다. 합천군 대양면이 그의 첫 발령지였고, 이어 울산시청으로 넘어와 울산과 인연을 맺었다. 서예는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고 나서 제대 후 발령나기 전에 잠시 시간을 내서 배우며 접했다.

그러다 1985년 12월 공직을 그만두고 우리나라 서예 거장인 소헌 정도준 선생에게 사사 후 본격적인 서예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안정된 직장인 공무원을 포기하고, 불안정하고 힘든 길일 수도 있는 서예가를 선택한 것이다. 이듬해인 1986년 4월에 그의 아호를 딴 연재서실을 개원했다.



◇서예·시조 병행 창작활동 이어가

정 서예가는 서예의 매력에 대해 “서예는 ‘문자예술’이자 그 사람의 인품을 보여준다. 또한 학문이 바탕이 돼야 예술로 승화할 수 있는 분야다”라며 “젊은 문장가는 있어도 젊은 서예가는 없는 게 그 이유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얀 화선지 위에 붓글씨를 쓸 때 잡념이 없어진다”고 덧붙였다.

지금까지 그의 서예 작품 수는 500점에 이른다. 전시회 참가는 300여 회가량이며, 가장 기억에 남는 전시회는 2008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한글아름아룬동행 초대전’을 꼽았다.

정 서예가는 시조라는 또 다른 분야 도전에도 나섰다. 2006년부터 시조를 독학하기 시작하며 꾸준히 공부했다. 그는 “옛 선비들의 시조를 공부하면서 시조의 매력을 느끼게 됐다”며 “다만 한시를 공부하다 보니 현대시조를 하는 데 있어 구어체가 몸에 익어 처음에는 애로가 많았다”고 말했다.

꾸준히 시조를 공부하던 그는 지난해 ‘월간문학신인작품상’에 당선되며 등단했다. 이어 지난달에는 자작 시조와 묵필로 엮은 ‘육필(손으로 직접 쓴 글씨) 시조집’ <칡꽃과 등꽃 사이>를 발간하며 첫 시조집도 냈다. 이 시조집은 문(文)과 서예가 어울리는 시조집이라는 의미에서 만들어졌다.

정도영 서예가는 “울산은 문화 관련 인프라가 많이 확충됐지만 전시 공간이 여전히 부족하다. 문학과 서예, 사진 등의 전시를 할 수 있는 복합전시관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향후 계획과 관련해 “우선 2년 내에 두 번째 시조집을 출간할 예정이며, 또 서예 개인전도 개최하며 서예와 시조 창작 활동을 꾸준히 병행해 나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차형석기자 stevecha@ks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