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의 시각]전문인력이 없어 문화 예산이 삭감되는 현실

2024-12-16     차형석 기자

“울산에 극 연출이나 창작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예산이 삭감됐다는 게 너무 안타깝고 한숨이 나오네요.”

최근 만난 울산의 문화예술계 인사는 울산시의 내년도 당초예산 중 문화예술 관련 예산이 시의회에서 줄줄이 삭감된 것과 관련해 이렇게 한탄했다. 실제 울산문화예술회관이 올렸던 내년도 당초예산안 중 △해오름동맹 창작뮤지컬 ‘철의 로드’ △시민 체감형 공연 마당놀이 ‘울산 장날’ △누구나 즐거운 문화도시 울산 마실극장 △광복 80주년 기념공연 △지역 역사·문화 콘텐츠 등 5개 사업의 예산이 모두 삭감됐다.

이 가운데 해오름동맹 창작뮤지컬 ‘철의 로드’는 울산과 경주, 포항 3개 도시가 함께 참여해 만드는 합동공연으로, 사업비가 4억원이나 되는 대형 프로젝트이지만 예산 칼질로 없던 일이 됐다. 또 반구천의 암각화 등 지역의 역사, 문화유산을 배경으로 제작하려 했던 실경뮤지컬과 어린이를 위한 창작 인형극 순회공연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누구나 즐거운 문화도시 울산 마실극장’도 사장됐다.

문제는 이러한 예술공연 사업들이 삭감된 가장 큰 이유가 울산문화예술회관에서 연극과 뮤지컬 창작 및 연출을 담당하고 있는 A감독이 올 연말 정년퇴직하게 되면서 이를 이어갈 후임자가 없는 데 따른 것이다. A감독은 울산문화예술회관에서만 25년간 근무하며 수많은 작품을 창작하고 연출했다. 2013년 국립극장에 초청돼 호평을 받았던 창작뮤지컬 ‘태화강’도 그의 작품이다. 사실상 그의 손에서 울산의 창작 연극과 뮤지컬 등이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울산문화예술회관은 A감독의 퇴직에 앞서 후임자 채용이나 자체 양성 등 준비를 하지 않았고, 결국 그가 퇴직하자 이처럼 내년에 문화예술 공연 및 콘텐츠 창작활동이 위축되거나 된서리를 맞게 된 것이다. A감독 혼자에게 전적으로 의존해올 수밖에 없는 울산의 허약한 문화예술 분야 인력 인프라가 여실히 드러난 셈이다.

지역에서 극 연출이나 창작을 할 수 있는 인물이 없는 현실도 후임자 채용을 못한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울산에는 연극이나 연출, 뮤지컬, 무용, 실용음악 등을 가르치는 대학의 학부나 학과가 전무하다. 울산예술고등학교에 무용과만 있을 뿐이고, 이 또한 졸업하면 결국 수도권이나 부산, 대구 등 타 지역의 대학으로 가야 한다.

이 때문에 울산에는 문화예술 분야, 그 중에서도 특히 연극이나 뮤지컬 쪽은 가뜩이나 사람이 없는데다 그나마도 40~60대가 주를 이루고 있는 실정이다. 젊은 문화예술인들은 울산에 오지 않거나 수도권 등에 정착하고 만다.

이에 지역 문화예술계에서는 오래 전부터 울산대 등 지역 대학에 연극이나 뮤지컬, 또 무용 관련 학과 개설을 요구하고 있지만 학령인구 감소 및 모집의 어려움 등으로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예산은 있어도 사람이 없어서 문화 콘텐츠 창작활동을 못하는 울산의 현실이 씁쓸하기만 하다. 차형석 부장대우 stevecha@ks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