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숙 시인의 월요시담(詩談)]한강 ‘조용한 날들 2’
비가 들이치기 전에
베란다 창을 닫으러 갔다
(건드리지 말아요)
움직이려고 몸을 껍데기에서 꺼내며 달팽이가 말했다
반투명하고 끈끈한
얼룩을 남기며 조금 나아갔다
조금 나아가려고 물컹한 몸을 껍데기에서
조금 나아가려고 꺼내 예리한
알루미늄 새시 사이를
찌르지 말아요
짓이기지 말아요
1초 만에
으스러뜨리지 말아요
(하지만 상관없어, 네가 찌르든 부숴뜨리든)
그렇게 조금 더
나아갔다
연약하지만 온몸으로 밀고 나아가는 용기
한강 작가님, 노벨문학상 수상 축하드립니다. 추운 겨울 저녁, ‘문학은 생명을 파괴하는 모든 행위에 반대하는 일’이고, ‘가장 어두운 밤에도 우릴 잇는 건 언어’라는 수상 소감에서 우리는 위안과 용기를 얻습니다.
이 시에서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달팽이가 나옵니다. 그동안 껍질에 숨어있던 연약한 달팽이, 물컹하고 부드러운 달팽이가 으스러지고 짓이겨질까 불안해하면서도 예리한 알루미늄 새시 사이를 나아갑니다.
달팽이 살이 연약하지 않았다면 새시에 긁히고 찔리고 피를 흘렸겠지요. 달팽이는 그 부드러움으로, 그 연약함으로 날카로운 새시 날을 덮으며 넘어갑니다.
나중에 달팽이는 ‘네가 찌르든 부숴뜨리든’ 상관없다고 말합니다. 놀라운 자각이고 용기입니다.
달팽이에게 이런 용기가 어디서 나왔을까요. 담장을 넘는 담쟁이를 생각합니다. 고래 앞에서 헤엄치는 청어 떼를 생각합니다.
한 마리 달팽이가 아닌 여러 마리의 달팽이, 수백 수천 마리의 달팽이를 생각합니다.
미국 덴버대 정치학 교수인 에리카 체노워스는 3.5%의 저항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달팽이들이 온몸을 밀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갑니다.
송은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