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시내의 초록지문(12)]나무의 겨울옷
나무가 잎을 떨구자 도시는 무채색으로 변했다. 무덥고 길었던 여름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한데, 골목을 휘감는 차가운 바람에 옷깃을 여미는 12월이다. 이맘때면 거리는 색색의 전구들이 불을 밝히며 활기찬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겨울밤과 연말에 어울리는 장면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따뜻한 불빛일 것이다.
겨울이면 나무는 빛으로 짠 옷을 입는다. 하지만 추운 밤을 밝히는 트리 장식과 조명은 우리에게만 아름답고 설레는 풍경이다. 나무는 대기 온도가 5℃ 이하로 내려가면 생리 활동을 멈추고 휴면에 접어든다. 이를 위해 가을부터 광합성과 증산작용을 줄이며 월동+을 준비한다. 어두워야 하는 야간에 밝은 조명은 수목의 생리적 리듬을 방해한다.
빛은 나무가 생장을 조절하는 중요한 요소다. 많은 빛에 노출되어 제대로 휴면하지 못하면 겨울눈 형성에 혼란을 주고 개화나 단풍, 낙엽 시기 등 생리적 이상이 생긴다. 또한 조명기의 열이 가지나 잎에 장시간 접촉할 경우, 일부 상록성 수종에서 불필요한 증산작용으로 인해 피해가 발생한다. 조명 설치와 제거 중에 생긴 미세한 상처가 병충해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나무에 이로운 겨울옷은 없을까. 1980년대 초반, 나무는 짚으로 만든 해충 잠복소를 옷처럼 입었다. 이는 흰불나방과 솔나방 방제에 효과적인 방법이었지만, 해충의 밀도가 예전처럼 높지 않은 요즈음은 이로운 곤충들도 함께 제거된다는 단점 탓에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최근 나무는 뜨개로 만든 옷을 입기 시작했다. 벽 낙서(Graffiti)와 뜨개질(knitting)의 합성어인 ‘그라피티 니팅’은 2005년 미국 텍사스에서 처음 시작됐다. 공공시설물에 털실로 만든 덮개를 씌우는 친환경 거리 예술로 출발했으며, 울산에서도 가끔 보이는 풍경이다. 차가운 겨울 경관을 부드럽게 만든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도 있지만, 공산품의 획일화된 디자인이 도리어 미적 감각을 해친다는 의견 또한 무시할 수 없다.
겨울 도시에 색을 입히는 작업은 필요하다. 다만, 우리가 사는 땅은 인간만을 위한 것이 아니기에, 생물 다양성의 시각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나무에 무언가를 입힌다면, 자연생태계를 존중하는 방법이어야 할 것이다. 또, 뿌리 내린 도시의 이야기를 담은 옷이라면 더할 나위 없겠지. 울산의 나무들이 울산의 서사가 담긴 옷을 입는다면, 그것만큼 의미 있는 겨울 풍경이 어디에 있을까.
송시내 나무의사·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