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작가와 도서관을 위한 ‘상주작가 지원사업’ 해외 연수기
쿵스홀멘의 파스텔톤 거리에 청사초롱이 붙은 건물은 쉽게 눈에 띄었다. 스웨덴 한국문화원이다. 입구 양쪽 벽에 ‘2024 한국그림책번역대회’를 알리는 형광색 포스터가 한글과 스웨덴어로 1장씩 붙어 있었다. 이경재 문화원장이 나와서 우리를 맞이했다. 스웨덴 한국문화원은 북유럽에서 유일한 한국문화원으로 한국을 알리는 다양한 문화 활동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스웨덴은 전세계에서 독서율 1위 국가로 책은 독서 그 이상의 존재인 만큼 문학이 중요한 나라예요. 스웨덴어로 번역되는 한국도서가 다른 언어권에 비해 적어 너무 안타까워요. 그래서 문화원이 개원한 2023년부터 한국출판진흥원의 지원으로 번역대회를 시작했어요. 한국문학이 언어의 벽을 넘는 작은 걸음이 되기를 기대하면서요”라고 말했다.
2023년 번역대회는 약 50명이 지원해 11권의 책을 번역했다고 한다. 큰 성과다. 우리가 방문한 날도 스톡홀름대학교 한국학과 학생 10여명이 찾아와 번역대회 설명을 듣고 번역할 책을 받아 갔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2023 우수도서를 문화원에 보냈는데 문화원에서는 그 책으로 도서관 ‘바다’를 만들어 교민들에게 대출해주고 있었다. 우리 상주작가의 책 <라그랑주점>도 우리보다 먼저 스웨덴에 도착해 우리를 반겨주었다.
스톡홀름대학교에서는 한국학을 가르치는 소냐 호이슬러 교수, <대도시의 사랑법>을 번역한 김은아 교수, 파견 예술가 손서은 작가를 만났다. 한국예술위원회는 2018년부터 스톡흘름대학교와 국제예술네트워크 기관으로 업무협약을 맺고 작가를 파견하고 있다. 한강 작가도 이 사업의 수혜자로, 2014년 폴란드 바르샤바대학교에 작가로 파견돼 체류하는 4개월 동안 <흰>을 구상해 발표했다고 한다. 손서은 작가는 자신의 번역된 책 <테오도루 24번지>로 학생들과 워크숍을 한다고 했다. 소냐 교수는 한국작가의 수업이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다고 했는데 저렇게 열정적이고 적극적인 작가가 있으니 그럴만도 했다.
스톡홀름대학교에서 말로만 듣던 ‘성 중립 화장실(Gender neutral restroom)’을 만났다. 남자와 여자는 물론, 흔히 성 소수자라 부르는 ‘중립 정체성 성 소유자’도 불편을 느끼지 않고 사용할 수 있다. 소수자에 대한 그들의 감수성이 시스템으로, 문화로 정착돼 있음을 실감했다.
쿵스홀멘국제도서관에서는 한국인 신미성 사서와 스웨덴인 관장님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에서 비로소 스웨덴의 도서관 이야기를 듣고 질문할 기회도 가졌다. 우리나라 책이음카드처럼 스웨덴도 문화부소속 카드 하나로 스톡홀름의 39개 도서관 이용이 가능한데, 우리나라와 다른 것은 카드를 분실하면 재발급 비용이 있고, 도서가 연체되면 연체비도 받는다고 한다. 반납은 도서관이 아니라도 시내 곳곳, 지하철역 등 어디서나 할 수 있다고 했다.
국제도서관에는 한국도서가 1300권이 있는데, 82년생 김지영은 인기가 많아서 항상 대출 중이라고 했다. <내이름은 삐삐롱스타킹>으로 전 세계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는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랜이 이 근처에서 살던 때의 일화도 들을 수 있었다. 1926년 미혼모에 대한 스웨덴 시골 분위기는 ‘타지로 도망가서 출산하든지, 마을에 남아서 가족의 수치가 되든지’였다고. 스톡홀름으로 등 떠밀려 온 린드그랜은 책을 읽고 싶어 도서관을 찾았지만 미성년자로 도서관카드를 발급 받지 못해 사서 앞에서 펑펑 울었다고 한다. 지금은 우리 같은 여행객도 간단한 신분 확인만 거치면 도서 대출이 가능하다. 신미성 사서를 포함한 국제도서관 사서 4명은 선진지 견학으로 한국도서관 방문을 계획하고 있었다. 도서관 선진국인 스웨덴에서 한국도서관을 배우러 온다니 어깨가 으쓱했다. 우리나라 도서관도 다른 나라에 보여줄 수 있을 만큼 많이 성장한 것이다.
쿵스홀멘은 스톡홀름 멜라렌호에 있는 섬으로 스웨덴어로 ‘왕의 섬’을 뜻한다. 오는 12월 노벨상 시상식과 만찬이 열리는 아름다운 스톡홀름시청이 이곳에 있다. 한강 작가를 축하하는 그 자리에 스웨덴문화원장, 파견 작가, 국제도서관 사서와 우리 모두의 환한 얼굴이 함께 있을 것만 같다.
하현숙 양정작은도서관 달팽이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