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자기 안의 갑(甲)의 심리

2024-12-20     경상일보

갑(甲)과 을(乙)의 문제가 사회현상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국민의 마음에 깊이 뿌리박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 본다. 심리적으로 자신이 甲의 위치에 있으려 한다는 것은 기득권자의 위치에서 생각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억압받는 민중에 두는 분도 있을 것이다. 대체로 자신을 보수라고 여기는 이들이 甲에 둘 것 같다. 甲과 乙은 은연 중에 역사 속 사건을 보는 시각이 다르다. 예를 들어 제주 4·3 사건과 5·18 민주항쟁은 서로 다르게 보는 측면이 있다. 甲은 공산화 세력과 연관된 음모를 의심하며 변방의 사건이라고 여길 수도 있다. 자신의 역사가 아닌 그들의 문제라고 보는 심리이다. 이에 비해 乙은 공권력에 의한 학살이라고 확신한다.

사실, 이런 甲, 乙 의식이 국민의 죄는 아니다. 건국 후 기틀을 다지며 국민을 위한 대통령이 드물었던 것이 나라의 불행이다. 현명한 위정자가 없이 온갖 국난을 당하게 되면 백성은 생존을 위한 무의식적 선택으로 권력인 甲의 편에 서게 된다. 비록 자신이 평생 능멸을 당해온 민초라 하더라도 그 심리는 억압을 받는 乙이 아니라고 여긴다. 제주와 광주처럼 정부로부터 핍박받은 그 지역주민은 乙이 되었다. 그리고 그 일에 대한 실체적인 진실을 알게 되어 의분을 느끼면 乙이 된다.

올해도 다사다난했다. 우린 너무 힘든 일을 겪고 있지만,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같은 경사스러운 일도 있었다. 선정 이유는 ‘역사의 트라우마를 개인의 연약하지만 강하게 이겨내려는 그 정신’ 이었다. 한강 작가는 소설 <소년이 온다>로 5·18을 다룬 데 이어 <작별하지 않는다>로 제주 4·3을 다루었다. 이처럼 그녀는 우리 한국인의 아픈 서사를 서정적으로 표현하며 문장 하나를 쓰고 지우며 고통스럽게 써 내려갔다. 그런데 일부 보수단체가 스웨덴 주한 대사관에 몰려가 상을 취소하라는 시위를 했다. 역사의 사실을 왜곡했다는 이유였다. 4·3과 5·18은 반란이 아니라 독재의 공권력에 대해 국민이 스스로 살기 위해 항쟁한 일로서 이미 정부가 보상하고 사죄한 팩트의 역사인데 이런 일들이 생긴다. 하긴 과거 박근혜 정권은 시대의 금기를 다루었다며, 그녀를 블랙리스트에 올리기도 하였다.

스스로 위정자 甲의 처지에 심리적으로 위치해오며, 저런 사건들을 다른 지역의 난리 정도로 보며 자신에 해당 사항이 없다고 여기지 않는지 조심스럽게 말해본다. 우리가 실체적 진실보다 자신이 보고 싶은 대로 현상을 본다는 것은 많은 일상과 거대 담론에서도 작용하는 심리 현상이다. 정신의학에 ‘원형’이라는 용어가 있다. 원형은 인간 전체에 공통되는 정신적 틀을 의미하며 자아, 그림자, 본능 등이 있다. 생각하는 내용, 억압되는 감정은 원형의 내용을 만든다. 같은 일을 겪는 나라의 국민이기에 원형들의 집합인 집단무의식은 비슷하다. 일본인이 ‘무사와 칼’의 시대를 오래 겪으면서 겉과 속이 다른 것과 감정을 발산하지 않는 것이 그들의 집단무의식에 내재한 심성인 것처럼 말이다.

핍박받은 역사가 많았기에 우린 다스리는 자의 역사관을 가지려 한다고 말씀드렸다. 소외되고 핍박받지 않으려는 심리는 ‘쏠림 현상’을 만들어 어느 나라보다 서울이란 수도에 너무 많은 것이 집중된 기형적 나라가 되었다. 이 외에도 우리의 그림자에는 의식에서 밀려났지만, 의식을 지배하는 ‘미운 오리 새끼’들이 있다. 의식이 우리 정신의 전부가 아님을 깨달으며 자기 안의 그림자를 조심해야 한다.

5·18과 4·3의 문제는 반공이냐 아니냐의 가치관보다 자신 안의 甲의 심리가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 국민은 역사를 대하는 태도에서 甲도 아니고 乙도 아니어야 한다. 우리는 역사의 심판자가 되는 것이 좋다. 강대국들 사이에 낀 반도인으로, 위정자의 복이 지지리도 없는 백성으로서, 분단되어 공산주의의 위협을 받는 휴전국의 국민으로서, 분별력과 정치력 없이 잘못된 자기 확신으로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돈키호테 같은 대통령을 둔 나라의 민초로서, 민주주의 근간이 무너지는 나라를 겪고 있는 우리는 두 눈 부릅뜨고 시대를 노려보아야 할 것 같다.

한치호 마인드닥터의원 원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