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숙 시인의 월요시담(詩談)]이시영 ‘어느 성화(聖畵)’

2024-12-23     경상일보

아기 예수가 오셨다는 영하 17도의 성탄 전야, 우성아파트 가는 언덕길 초입에서 군고구마장수 부부가 장작불이 이글거리는 화덕의 연통을 양쪽에서 꼭 끌어안은 채 칼바람을 맞고 있었는데, 나무뿌리처럼 강인하게 얽힌 그들의 두 팔을 지상의 그 누구도 다시는 떼어놓을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맹추위도 버티는 두 사람의 사랑

꽝꽝 언 얼음에도 숨구멍이 있어 공기가 드나들고 얼음 밑의 고기들이 숨을 쉰다. 영하 17℃의 지상이 이런 얼음 세상이라면 화덕의 연통은 숨구멍이라 하겠다. 군고구마 장수 부부가 그 숨구멍을 끌어안고 추위를 견디고 있다. 온기 한 점이라도 빼앗길까 봐 꼭 끌어안고 있다.

연통을 한 그루 나무라 생각할 수도 있다. 연통을 끌어안은 팔은 나무뿌리일 테니 저 강한 얽힘은 더 단단한 지지, 굳셈, 견딤을 말한다. 아, 세밑이라 밝음과 꿈, 희망에 대해 얘기해야 하는데 나는 ‘견디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다. 견디는 건 참고, 기다리고, 인내하며 계속해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니까 견딤은 삶 쪽을, 빛 쪽을, 희망 쪽을 향한다. 희망이 없다면 누가 이 엄동을 견딜 수 있겠는가.

고린도전서 13장의 사랑에 관한 그 유명한 말씀도 ‘사랑은 오래 참고’로 시작한다. 그러니 견딘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 단단히 얽힌 두 뿌리가, 넷의, 여섯의, 수백 만의 거대한 뿌리가 되어 견고한 한 그루 나무를 이룬다는 것. 시의 제목이 ‘어느 성화(聖畵)’이니 우리는 두 부부에서 요셉과 마리아를 떠올린다. 그리고 다행히 우리는 이 이야기의 결말을 알고 있다.

송은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