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면주 칼럼]왜?

2024-12-24     경상일보

갑진년 해가 저물 무렵 결국 청룡이 요동치고 말았다. 야당의 유례없는 정치적 공세에 시달리던 대통령의 계엄 선포로 일거에 세모는 꽁꽁 얼어붙었다. 우리 헌정사에 비상계엄의 선포는 약 10차례 정도 있었다. 6·25 당시를 제외하고는 국가의 안위보다 주로 정권 장악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특히 현대사의 큰 상처인 5·18도 비상계엄령의 전국 확대와 동시에 발생한 일이라 국민에게 계엄은 엄청난 트라우마로 각인돼 있다. 국민 정서의 역린을 건드린 모양이 되어 온갖 논란이 구구한 가운데, 국민의 첫 마디는 모두 ‘왜?’로 모아지고 있다 .

대학 시절 계엄 하에서 격랑의 시절을 보낸 79학번 윤 대통령이 왜 이러한 선택을 했는지가 국민의 첫 번째 ‘왜’이다. 대통령은 야당이 이 정부 출범 후 22건의 정부 관료와 다수의 검사를 탄핵해 국가의 행정과 사법 작용이 심각한 타격을 입었고, 국가 운영에 필요한 민생, 치안 예산을 모두 삭감해 국가의 본질 기능을 훼손했으며, 야당 대표 방탄을 위한 정쟁에만 몰두해 헌정질서를 교란한 것을 명백한 반국가 행위로 보았다.

국회의 압도적 다수당이 됨을 기화로 헌정사에 유례없는 탄핵소추권의 남용과 당 대표 개인적인 사법리스크의 방탄을 위해 공권력을 조자룡이 헌 칼 쓰듯이 휘두르는 것은 위헌적이고 반민주적인 행태임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국민 정서가 경기를 일으키는 계엄 선포를 선택한 것은 좀처럼 납득하기 어렵다. 총선에서 완패한 만큼 야당에 연정을 제의하거나, 야당이 원하는 일부 특검법안을 수용하는 등 대화와 타협의 방향을 설정하지 못한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철학과 인식의 부족임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대통령이 잘못된 현실 인식으로 계엄 선포를 결심해도 선포 전에 권력 내부에서 이를 제지할 법적인 장치가 없다. 계엄 선포가 국무회의 심의 사항이기는 하지만 의결사항이 아닌 이상 통과의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야당의 입법 독주가 도저히 국정을 정상적으로 운영할 수 없는 지경이라도 현행 헌법상 대통령은 법률안 거부권을 제외하고는 특별한 국회 견제 권한이 없다. 승자 독식 구조인 소선구제에서 출현 할 수 있는 다수당의 위헌적인 독주를 견제하기 위해 국민투표를 조건으로 하는 국회 해산 제도도 검토해 볼 만하다.

두 번째의 ‘왜’는 대통령과 전 여당 대표 한동훈과의 관계다. 그 간 대통령과 한동훈은 전두환과 노태우 이상의 밀접한 관계로 보였다. 총선을 앞두고 한동훈이 여당의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임명된 후부터 갑자기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하더니, 결국 총선 폭망으로 이어졌고, 계엄 정국에서는 대통령의 퇴진에 한동훈이 최선두에 서는 모습을 보인다.

이를 두고 온갖 듣기 민망한 설들이 난무한다. 좀 더 나은 보수 정치를 위한 노선 투쟁으로 선회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공천을 둘러싼 주도권 싸움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대부분이다. 박근혜 당시에도 대통령과 당 대표 간의 공천 주도권 싸움으로 총선에 패하고, 결국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졌다. 다시 같은 길을 반복하는 것은 공천제도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직시하지 못하는 보수 여당의 무능력 때문으로 볼 수밖에 없다.

세 번째 ‘왜’는 계엄군이 국가 기관 중 구태여 선거관리위원회에 진입해 선거 관련 서버를 확보하려 했느냐 하는 점이다.

부정선거 논란은 2020 총선에서 미래통합당이 패배한 후 일부 유튜버에 의해 사전 투표 부정 의혹이 제기되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확산 일로에 있다. 공식적으로 선거무효 소송 등에서 인정된 바가 없고, 중앙선관위도 단호히 부인하고 있다. 문제는 많은 국민이 그렇게 인식하고 있고, 여기다 인기 유튜버와 거물 정치인이 가담했다는 점이다. 이런 차에 계엄군의 선관위 진입은 온갖 추측과 가짜 뉴스의 진원지가 되고 있다. 공정한 투표의 관리는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중심축이다. 차제에 정치권은 이에 대한 분명한 답을 제시해 더 이상 국민의 분열과 혼란을 막아야 한다.

여하튼 대통령은 이제 헌법재판소의 심판과 수사를 받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핵심 사안이 될 내란죄 성립 여부는 학계에서도 논란이 많은 만큼 정치권은 더 이상의 선전·선동과 정쟁을 멈추고, 국가의 안정을 위해 그 결과를 지켜볼 일이다.

신면주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