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노래의 힘

2024-12-27     경상일보

‘아득히 머나먼 길을 따라 뒤돌아보면은 외로운 길/비를 맞으며 험한 길 헤쳐서 지금 나 여기 있네(중략)나와 함께 걸어가는 노래만의 나의 인생/언제까지나 나의 사랑하는 당신 있음에/언제까지나 나의 노래 아껴주는 당신 있음에’

작곡가 박춘석이 소울메이트나 다름없었던 가수 이미자를 위해 헌정한 ‘노래는 나의 인생’이다. 이미자의 가수 인생 30주년을 기념한 이 노래는 트로트의 새로운 영웅으로 등장한 임영웅이 다시 부르면서 역주행했다.

몇 년 전 이미자는 울산문화예술회관에서 ‘노래 인생 60년 기념 음악회’를 가졌었다. 코로나가 종식되지 않은 상황이었음에도 티켓 구하기는 전쟁에 비유될 정도였다. 과연, 트로트의 여왕답게 이미자는 이미자였다. 적잖은 나이였음에도 공연 2시간을 홀로 꽉 채웠다. 죽은 자와 산 자를 이어주듯 부모님에 이어 나도 숱하게 듣고 따라 불렀던 노래들이 반갑고 정겨웠다. 노래로 인해 지나간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노래의 힘을 새삼 느꼈다. 노래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불리어졌고 들었다.

어릴 때 부모님 손에 이끌려 모내기나 추수할 때도 이런저런 노래를 들었던 기억이 있다. 허리를 숙였다 폈다를 끝없이 반복해야 하는 농사에서 노래는 잠시나마 고통을 잊게 하는 치유의 목소리였고, 풍요를 기원하는 희망의 울림이었다. 어렵고 힘든 농사일에 농요(農謠)가 없었다고 생각하면 아득하고 아찔했을 것이다. 그때 아버지와 어른들이 추임새를 넣어 흥얼거렸던 노래는 지금도 여전히 최애곡이다. 술 한잔 걸치고 부르는 노래는 삶의 희로애락이 깃든 또 다른 반주(伴奏)였고, 또 하나의 반주(飯酒)였다.

젓가락 장단으로 때론 신나게, 때론 애절하게 불렀던 노래도 정겹기는 매한가지다. 나의 학창 시절은 통기타 가수들의 노래가 주름잡았다. 친구들과 놀러 가면 기타 하나 메고 원 없이 목이 터지라 불렀었다. 조용필 노래는 두말하면 잔소리다. 지금으로 치면, 조용필 ‘덕질’을 했다고도 볼 수 있다. 신곡 발매와 동시에 음반을 샀다. 테이프가 늘어질 정도로 듣고 또 들었다. 가사를 적은 메모지를 항상 휴대하고 다니면서 불렀다. 지금도 조용필 노래는 웬만하면 자막을 보지 않고도 부를 정도다. 최근 74세라는 나이에도 정규 20집 앨범을 냈다는 소식에 얼마나 반갑던지 눈물이 났다. 가왕이라는 칭호에 어울리는 명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이 마지막 앨범일 수도 있다”라는 인터뷰에 가슴이 철렁했지만 “그렇지만 또 새로운, 좋은 곡을 만들면 또 할 예정”이라는 말에 안도의 가슴을 쓸어내렸다.

생로병사를 피할 수 없는 게 인생이지만 힘이 닿는 한 무대에 서고 노래를 계속 불러줬으면 하는 것이 ‘찐팬’으로서 바람이다.

얼마 전 하나밖에 없는 딸내미를 시집보낼 때는 장민호의 ‘내 이름 아시죠’가 어찌나 구슬프게 들렸는지 울컥했다. ‘어두운 그 길을 어찌 홀로 가나요/새들도 나무들도 슬피 우는 밤/(중략)/길 잃으면 안돼요/꿈에 한번 오세요/잘 도착했다 말해요’라는 가사가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나게 했다. 아버지가 되니 호락호락하지 않았던 아버지의 삶이 이제야 뚜렷이 보이는듯했다. 노래가 타임머신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임영웅과 장민호처럼 요즘 가요계의 대세 유행이 역주행이다. 노래의 역주행은 과거의 추억과 기억을 소환한다.

내가 좋아하고 즐겨 불렀던 노래들도 하나둘 역주행의 타임머신을 타고 있다. 김창완의 ‘청춘’은 김필에 의해 되살아났고, 윤수일의 ‘아파트’는 로제에 의해 글로벌 히트송으로 재개발됐다. 울산공업축제에서도 옛 노래와 춤이 한데 어우러지는 잔치마당이 펼쳐져 많은 사람을 추억의 타임머신을 경험했다. 부산하면 ‘돌아와요 부산항에’, 여수하면 ‘여수 밤바다’처럼 이제 울산도 울산의 노래로 울산답게를 완성해야 한다. ‘동해나 울산은’으로 시작되는 ‘울산아가씨’도 좋고, ‘간절곶 붉은해가’로 시작하는 ‘우리의 울산’이라는 노래도 조금 더 대중적으로 알려 울산 사람으로서 긍지와 자부심을 높여나갈 필요가 있다. 노래에는 어제의 추억과 기억도 있지만, 내일의 꿈과 희망도 담겼다. 2025년 을사년, 푸른 뱀의 해에는 노래의 힘이 여전히 강하다는 것을 확인하는 뜻깊은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김종대 울산시 대외협력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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