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헌정질서는 유지되어야 한다

2024-12-30     경상일보

경제가 좋지 않은데다 계엄사태 때문인지 연말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매달 한번씩 만나는 사법연수원 동기인 검찰 출신 몇몇 변호사들의 며칠전 점심 모임에서도 탄핵과 내란이 단연 화제였다. 대통령은 자유 헌정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계엄이라고 했지만, 헌법을 공부한 법률가 출신이 그런 정도의 판단을 했다니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 모두의 반응이었다.

현재 야당 대표는 민주 헌정질서를 수호하기 위해 조속한 대통령의 파면과 함께 내란죄로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헌정질서 수호는 헌법의 규범력이 지켜지고 법치가 바로서야 가능하다. 주권재민의 자유민주주의는 헌법과 법률에 정해진 요건과 절차에 맞게 국가 권력이 행사될 것을 요구한다. 누구든지 권력 행사가 헌법과 법률에 위배되면 응분의 법적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 이것이 법치주의이고 헌정질서를 지키는 길이다.

계엄은 국회의 해제 요구 의결로 3시간만에 종료됐지만, 생중계된 국회 현장의 헬기에서 군인들이 내리고 창문을 깨고 의사당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은 자유민주주의가 침탈되는 장면을 연출했다. 그 동안 야당의 입법 및 탄핵 폭주 그리고 일방적인 예산 삭감 등이 이어져 헌정질서에 위협이 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계속되는 야당의 폭주에 진절머리가 났을 것이지만 그 대응으로서의 계엄은 헌정질서를 침해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

헌법 조문을 한번 읽어보고 숙고했더라면 그렇게 했을까. 비상계엄이 선포돼도 국회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할 수 없도록 헌법과 계엄법에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 처음 계엄 선포를 목도하면서 혹시 계엄해제 요구 의결 정족수가 과반이 아니라 3분의 2인가 의심스러워(!) 법전을 찾아보기까지 했다. 현재 여당이 3분의 1을 좀 넘는 국회의원 의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검찰·공수처·경찰·군검찰의 수사 및 기소 과정에서 드러나는 사전 모의와 정치인 체포의 지시, 군을 동원해 국회와 선관위 등을 무력 제압하려는 시도는 1980년 제5공화국 군사정권의 악몽을 떠오르게 한다. 국가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없는 비상사태가 아님에도 계엄이라니 말이 안된다. 국민들은 과거 1인 장기집권으로 말미암은 정치적 혼란이나 그로 인한 정권의 부패와 타락 또는 권위주의적 통치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어 권력의 남용에 의한 헌정의 침탈을 용납하지 않는다.

계엄 해제 며칠 뒤의 대통령 담화는 이번 계엄이 그동안 계속된 야당의 입법 및 탄핵 폭주와 무도한 예산 삭감의 횡포에 맞서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밝혔다. 통치행위라는 의미다. 그렇다면 계엄이 아니라 바로 그같은 담화나 회견을 통해 야당의 폭주가 헌정질서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고 국가 기능의 정상적 수행을 위해 여론의 힘을 보태어 달라는 진솔한 호소를 주권자인 국민에게 하면서 더욱 인내했어야 했다.

원래 민주주의는 공동의 과제에 대한 결정이 구성원들의 의사의 합치에 의해 이루어질 때 정당성을 획득한다. 다수와 소수의 구분이 없이 동등하게 결론을 이끌어내는 것이 맞지만 하나의 결론이 불가능하다면 불가피하게 다수결에 따를 수밖에 없다. 또한 결론을 이끌어 내는데 시간이 걸릴지라도 헌법과 법률의 적법절차에 따라 설득과 타협, 양보와 자제 등의 노력을 해야 한다.

현재 여러 부문에 불확실성이 심각함에도 야당은 자제하지 않고 대통령 권한대행을 탄핵하는 등 폭주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거리에도 연일 시위 인파가 넘쳐 난다. 헌정질서의 위기는 항상 권한의 남용에서 비롯된다. 대통령이 파면될 정도로 중대하게 헌법과 법률을 위반했는지, 내란죄를 저질렀는지는 탄핵 심판과 수사·재판에서 판가름날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는 개인의 존엄 및 국민의 자유와 권리 보장은 물론 공동체의 평화 및 정의와 공정의 실현이다. ‘자유’ 수호이든 ‘민주’ 수호이든 헌정질서가 유지되고 법치가 이루어져야 가능한 일이다.

박기준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