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금칼럼]맥베스의 비극

2024-12-31     경상일보

대통령의 느닷없는 비상계엄 선포는 엄청난 혼란을 가져왔다. 이로 인해 대한민국이 치르고 있는 사회적 비용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대통령은 ‘종북 반국가세력 척결과 자유 헌정질서 수호’를 내세우고 있지만, 이에 동의하는 국민들은 많지 않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대통령이 왜 이렇게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을 했는지 의아해 하며 여러 가지 해석을 내놓고 있다.

이와 관련해 우선 근본적으로 인간은 합리적·이성적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를 이론으로 정립한 것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카너먼과 트버스키의 ‘전망이론’(prospects theory)이다. 사람들은 감정적이고 인지적 편견에 영향을 받으며 불완전한 정보에 의존해 의사 결정을 내린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자기 신념이나 가치관과 일치하는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고 그와 반대되는 정보는 무시하거나 과소평가하는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에 사로잡혀 잘못된 결정에 이른다는 것이다.

이보다 더 적나라하게 인간의 비이성적 본성을 드러내는 것은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이다. 특히 영국의 더타임스가 한국의 계엄에 대한 해설기사에서 맥베스 부인을 언급하면서, 그가 쓴 ‘맥베스’가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잘 알려진 대로 맥베스는 전장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길에 세 마녀로부터 왕이 될 것이라는 예언을 듣는다. 긴가민가하고 주저하는 맥베스에게 맥베스 부인은 왕을 제거할 것을 사주한다. 결국 맥베스는 왕을 살해하고 왕위에 오른다. 하지만 맥베스는 죄책감에 시달리며 괴로워하다 다른 영주와 왕의 아들의 반격을 받고 최후를 맞는다. 맥베스는 때를 기다리면 자연스럽게 왕이 될 수도 있었다. 많은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부하와 귀족들로부터의 신임도 두터운 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녀의 예언과 레이디 맥베스의 부추김에 빠져 섣불리 칼을 뺐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 것이다. 더타임즈는 이 과정에서 맥베스 부인의 역할을 예로 들며 대통령의 계엄이 상당 부분 대통령 부인으로부터 초래된 것이라는 뉘앙스를 주고 있다. 하지만 결국은 이 모든 것이 인간에 내재한 비이성적 본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실 적지 않은 국민들이 야당 대표의 범죄행위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고, 이를 가리기 위해 야당이 자행한 국무위원 탄핵, 무리한 입법, 일방적인 예산 삭감 등에 대해서 과도하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상황을 국민들에게 차분히 설명하며 간곡히 지지를 호소했다면 시간은 대통령에게 그리 불리한 국면은 아니었을 지도 모른다. 더욱이 유력한 대통령 후보인 야당 대표들 중 한 사람은 1심에서 피선거권이 박탈되는 선고를 받았고, 다른 이도 이미 영어(囹圄)의 몸이 되어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은 계엄이라는 비상조치를 통해 국면을 일거에 뒤집으려는 무모한 시도를 했다. 왕을 살해해서라도 빨리 왕위를 차지하려는 맥베스의 비이성적 조급함이 보인다.

더구나 이번 계엄선포와 관련된 핵심 인사들 주변에는 무슨 법사, 보살과 같은 황당한 인물들이 포진하고 있다. 이들 중 일부는 대통령의 운세는 하늘이 내린 것이라느니, 내년에 대운을 맞이할 것이라느니 하는 주술적 예언을 쏟아내고 있다. 마치 맥베스의 마음을 흔든 마녀들의 모습과 아주 유사하다. 혹시 대통령도 맥베스처럼 이런 사람들의 예언에 의존해 계엄을 선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계엄 이후의 혼란 상황에서 더 우려되는 것은 또 다른 맥베스가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야당은 차분히 헌법과 법률이 정한 민주적 절차를 따르지 않고 이 기회를 틈타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맥베스에 못지않은 욕망과 조급함을 드러내고 있다. 대한민국의 미래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이 대권을 위해서는 국정마비도 불사할 태세다. 대통령 탄핵이야 그렇다 쳐도 자신들의 의도에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대행을 맡고 있는 국무총리까지 탄핵한 것은 지나치다. 시민들을 거리로 뛰쳐나오도록 독려하고 자극해 분열을 일삼는 행위도 자제돼야 한다. 광장보다는 국회와 법정에서 토론과 판결을 통해 민주적이고 이성적으로 문제를 풀어 나가야 한다. 이제 더 이상 맥베스의 비극은 보고 싶지 않다.

정준금 울산대 사회과학부 교수 행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