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플라스틱 협약과 미세 플라스틱

2024-12-31     경상일보

지난달 25일 부산 벡스코에서 플라스틱 오염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국제협약 회의가 있었다. 2022년 시작된 플라스틱 협약은 파리기후협약에 버금가는 국가 간 환경 협약이자 플라스틱 오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회의로 기대하는 바가 컸다. 그러나 170여개 국의 일주일간 협상 노력에도 합의를 이끌어 내지 못했다. 생산 규제를 담은 성명을 지지한 국가가 100여개 국에 달했지만, 소수 산유국들이 극구 거부하면서 협상은 무산되었다. 반대에 앞장선 사우디아라비아는 플라스틱 자체 문제가 아닌 오염이 문제이기 때문에 생산에는 차질이 없어야 한다며 재활용과 폐기물 관리에만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 세계 플라스틱 생산량은 연간 약 5억t에 달하며, 계속 증가 추세에 있다. 우리나라 1차 플라스틱 폴리머 생산 능력은 세계 4위이다.

화석연료로 만들어지는 플라스틱은 썩어 문드러지는 기간이 매우 길다. 종류에 따라 수백 년을 넘어 수만 년까지 걸린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플라스틱은 시간의 흐름과 같이 눈에 보이지 않게 조각조각으로 부스러짐이 극단적으로 진행된다. 먼지보다 잘게 부스러진 미세플라스틱 조각은 지구 순환 시스템을 따라 지구 곳곳으로 퍼져 나가고 있다. 에베레스트산과 해양, 심지어 남극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해산물 중 미세플라스틱 함량을 분석한 논문에 의하면, 아주 적은 양이지만, 연체동물인 오징어, 그리고 홍합과 굴에서의 미세플라스틱량은 갑각류(새우, 게)보다 약간 높게 나왔으며, 일반 어류에서는 보다 낮게 확인된다고 했다.

농경지의 미세플라스틱 문제도 간과할 수 없다. 농경지에서 플라스틱 사용량 증가와 더불어 플라스틱으로 코팅된 농약이나 음식물 찌꺼기를 원료로 하는 유기질 비료들이 농경지 미세플라스틱 농축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토양에 서식하는 지렁이나 미생물이 미세플라스틱을 섭취하면 생체 내부에서 더욱 작은 초미세플라스틱으로 쪼개져서 식물 뿌리를 통해 흡수되고 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와 있다.

일상생활 속에서 흔히 사용되는 종이컵, 티백, 전자레인지용 식품용기, 플라스틱 도마, 합성화장품, 폴리에스터 의류 등은 이미 널리 알려진 미세플라스틱 원천이다. 일반 주택에서 발생하는 먼지의 3분의 1은 폴리에스터, 나일론 등으로 만든 합성섬유 의류로부터 떨어져 나온 미세플라스틱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난해 국내 안전성평가연구소 독성 연구팀에서 미세플라스틱이 호흡기로 들어와 폐에 축적되면서 폐 손상을 일으켜 염증을 유발할 수 있음을 규명한 바 있다. 1ℓ 생수병(페트병)에서 평균 24만개의 미세플라스틱이 검출되었다는 연구 결과뿐만 아니라 미세플라스틱은 암을 유발할 수도 있다는 연구 결과가 여럿 있다. 또한 플라스틱에 첨가된 화학 물질 중에 태아의 뇌신경 세포 생성에 나쁜 영향을 준다는 연구 보고도 있다.

부산 벡스코 플라스틱 협약의 합의를 반대하며, 재활용과 폐기물 관리만으로 플라스틱 오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은 미세플라스틱 문제의 심각성을 간과한 것이다. 훗날 플라스틱 협약이 이루어져서 생산 감축 합의가 되더라도, 우리 각자는 몸속으로 스며드는 미세플라스틱 조각을 막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국가는 우선 깨끗한 수돗물 공급을 보장해야 할 것이며, 음용 수돗물과 화장실용 물을 분리 공급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이는 기후변화로 인한 물 부족 상황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페트병 생수 사용을 억제하기 위해 생수병에 20% 부가세를 매기기로 한 프랑스의 정책도 참고함이 좋을 것 같다. 갈수록 플라스틱 오염이 증가하고 있는 농경지 보호를 위해 농업용 비닐 등 플라스틱 제품 사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대체 재료 등에 대한 연구 지원도 필요하다.

한 외국 기자가 언급한 “한국은 플라스틱 중독 국가”라는 부끄러운 말이 더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건강한 삶을 원한다면 플라스틱을 멀리 하라”라는 말을 모두 기억하기 바란다.

허황 울산대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