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골목상권이 사라진다]상인 고령화·프렌차이즈 등장으로 쇠퇴

2024-12-31     박재권 기자
“결국 우리도 시대의 흐름에 맞게 변해야 합니다. 그래야 손님도 오겠죠.”

30일 방문한 울산 중구 옥골시장 죽골목. 최근 아케이드 누수 보수 공사가 끝남에 따라 잠시 장사를 중단했거나 다른 곳으로 옮겨 죽을 팔던 상인들은 다시 이곳으로 모였다. 점심 시간이 되자 3~4명 정도의 무리가 죽을 먹기 위해 가게 한켠에 마련된 자리에 앉아 주문을 하는 모습이 목격됐다.

어떤 이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호박죽을, 다른 이는 새알이 듬뿍 담긴 단팥죽을 시켰다.

다른 테이블에서 먼저 식사를 마친 한 노인은 “오늘도 잘 먹었다. 역시 맛있다”며 주머니에서 꼬깃한 만원짜리 지폐 한장을 상인에게 건넸다. 상인이 거스름돈을 건네자 노인은 이를 사양한 채 골목을 벗어났다.

죽골목은 광복 이후 1940년대에 장사꾼들이 모이다 형성된 곳으로 알려져 있다. 당초 떡과 함께 죽을 팔았지만, 죽이 더 유명해지면서 죽골목이라는 명칭이 붙었다.

2000년대로 넘어오며 죽골목을 찾는 시민들이 줄어들자 이곳을 살리기 위해 중구는 2013년 아케이드를 설치하고, 파라솔 및 천막 등을 정리했다. 노점마다 칸막이도 마련했고, 보행자들을 위한 보도 공간도 확보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10여 년이 흐른 지금, 죽을 파는 상인들의 고령화로 인해 현재 13명가량만 남아 죽골목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죽골목은 프렌차이즈 업체의 등장과, 일정하지 않은 맛으로 인해 찾는 사람이 드문 실정이다. 울산 시민 중 죽골목이라는 게 있는지 모르는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일각에서는 종갓집을 표방하는 중구의 전통 골목이라는 상징성을 감안하면 지자체 차원의 맛 컨설팅 등 죽골목에 대한 활성화 방안을 모색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다만 죽을 파는 상인들 스스로도 변화하는 시대에 발맞춰 발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우선 지자체는 상권을 살리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중구는 옥골시장 죽골목을 포함해 관내 시장과 상권 등을 부활시키기 위해 상세한 진단을 하는 전반적인 실태 조사 용역을 실시 중인데, 용역은 내년 3월까지 진행된다.

이와 함께 준비 기간을 거쳐 내년 2월께 정부의 상권 활성화 공모 사업에 도전한다는 계획이다. 지원 분야는 일반 상권 또는 도심형 소형 상권이 될 것으로 보이며 사업 기간은 최대 5년이다. 공모에 선정될 경우 5년 동안 국비 50%, 지방비 50% 비율로 최대 100억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

특히 해당 공모가 환경 개선 등이 아닌 상인 역량 강화, 강소 프로그램 발굴이라는 점에서 옥골시장 죽골목이 살아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희망도 엿보인다.

중구 관계자는 “각 구역별 지정을 거친 뒤, 개선안 등을 모색해 내년도에 공모에 나설 계획”이라며 “보다 구체적인 방안은 검토 중에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같은 사업이 빛을 보기 위해서는 결국 죽을 파는 상인들의 의지가 뒷받침돼야 할 전망이다.

죽골목에서 7년 째 장사를 하고 있다는 한 상인은 “사람들이 왜 죽골목을 찾지 않는지 우리부터 잘 생각해야 한다”며 “사람들이 음식점을 찾는 이유는 결국 맛과 위생이다. 기본을 지켜야 한다. 손님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반성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박재권기자 jaekwon@ks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