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숙 시인의 월요시담(詩談)]황지우 ‘나는 너다 503’

2025-01-06     경상일보

새벽은 밤을 꼬박 지샌 자에게만 온다.
낙타야.
모래 박힌 눈으로
동트는 지평선(地平線)을 보아라.
바람에 떠밀려 새날이 온다.
일어나 또 가자.
사막은 뱃속에서 또 꾸르륵거리는구나.
지금 나에게는 칼도 경(經)도 없다.
경(經)이 길을 가르쳐 주진 않는다.
길은,
가면 뒤에 있다.
단 한 걸음도 생략할 수 없는 걸음으로
그러나 너와 나는 구만리(九萬里) 청천(靑天)으로 걸어가고 있다.
나는 너니까.
우리는 자기(自己)야.
우리 마음의 지도 속의 별자리가 여기까지
오게 한 거야.



꾸준히 나아간다면 결국 이뤄지리

다시 나는 너다. 이제 시인은 낙타를 타고 사막을 건너 ‘청천(靑天)’으로 가고 있다. 청천은 끝내 도달하고 싶은 곳, 아마 겨울 숲과 사막을 넘어선 상춘(常春)의 땅일 것이다.

시인은 ‘칼도 經도 없’이 그 길을 간다. 칼이 무기, 무력, 힘이라면, 경은 헛된 이론이나 이념이라 하겠다. 그런 것이 길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

칼은 다른 사람뿐 아니라 결국 자신을 해치게 마련이고 경은 탁상공론에 빠지기 쉽다.

시인을 이끄는 것은 마음의 지도이다. 길은 그 지도를 따라 ‘한 걸음도 생략할 수 없는 걸음’으로 그저 뚜벅뚜벅 걸어갈 때 생기는 것. 앞서간 사람을 따라 다른 이들도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갈 테고 그 걸음들이 모여 길을 만든다.

그런데 시인은 길을 떠나는 ‘새벽’이 ‘밤을 꼬박 지샌 자’에게만 온다고 하였다. 새벽은 밤을 지새운 사람, 그러니까 동이 트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 동트는 모습을 두 눈으로 바라보기를 염원하는 사람에게만 온다. 새벽은 새벽이 오기를 바라는 사람에게만 온다.

많은 사람이 새해의 해돋이를 보러 찬바람을 무릅쓰고 바닷가나 산 정상이나 하다못해 옥상으로라도 갔을 것이다. 그 바람이 새벽을 불러온다. 새벽이 온다.



송은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