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눈물상자’의 선물

2025-01-08     경상일보

새해 첫날, 올해는 방학 방과후학교 수업으로 시작했다. 조금은 특별한 수업이다. 학생 4명과 교사인 나, 이렇게 5명만이 참여하는 단출한 수업에서 우리는 함께 소리 내어 책을 읽고, 느낀 바를 나누었다. 우리가 처음으로 같이 읽은 책은 한강 작가님의 <눈물상자>, 어른을 위한 동화이다.

이야기는 이른 봄날 갓 돋아난 연둣잎이 햇빛에 반짝이는 모습을 보고도 눈물을 흘리는, ‘눈물단지’라는 별명을 가진 여자아이가 검은 옷과 눈물상자가 담긴 검은 가방을 들고 다니며 눈물을 모으는 아저씨를 만나며 시작된다.

책에는 눈물의 다양한 빛깔과 감정이 섬세하게 표현돼 있다. “주황빛이 도는 눈물은 몹시 화가 났을 때, 회색빛 눈물은 거짓된 눈물, 분홍빛 눈물은 보고 싶은 사람을 보지 못할 때, 연한 연두색은 아기들의 눈물, 진한 연두색 눈물은 엄마들이 아기를 위해 흘리는 눈물…”이라는 구절을 읽으며 학생들은 너도나도 자신만의 감정을 나눴다.

“우리가 흘리는 눈물에는 정말 다양한 의미가 있네요!” “그럼, 우리가 살면서 ‘순수한 눈물’을 흘리는 순간이 있을까요?” 한 학생의 이 질문에 우리 모두 잠시 말을 멈추었다.

이야기 속에는 평생 눈물을 흘리지 못해 냉정한 사람으로 오해받고, 사랑하는 아내를 떠나보내야 했던 한 할아버지가 나온다. 그는 눈물상자를 가진 아저씨에게 전 재산을 주고 눈물을 사서 간절한 눈물을 흘리며 비로소 자신의 감정을 터뜨린다. 처음에는 고통 속에서 눈물을 흘리던 할아버지는 나중엔 기쁨의 눈물로 나아가는 모습에서 우리는 모두 감동했다. 막혀있던 감정이 해소되는 듯 마음이 놓였다.

책을 다 읽고 난 후, 학생들의 소감을 들어 보았다. 학생들은 얇은 책 한 권이었지만 처음에는 조금 부담스럽게 느껴졌다고 했다. 그러나 한 페이지씩 돌아가며 소리 내어 읽다 보니,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지고 점점 더 재미있게 느껴졌다며 스스로도 신기해했다.

또한 책의 내용에 대해 자연스럽게 쏟아진 자기 생각과 감정을 말하고 들으며 “내가 이렇게 낭만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다니!” “나에게 이런 면이 있었나?”라며 새롭게 자신을 발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함께 책을 읽으며 이야기를 따라가는 동시에, 어쩌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게 된 것 같다.

책 속에서는 순수한 눈물을 이렇게 표현한다. “아무 것도 담겨 있지 않은 눈물이 아니라, 모든 뜨거움과 서늘함, 가장 눈부신 밝음과 가장 어두운 그늘이 담길 때, 거기에 진짜 빛이 어린다.” 또한, “분노와 부끄러움, 더러움조차 피하지 않고 온전히 담겨 복잡한 빛깔이 된 눈물이야말로 순수한 눈물”이라고 말이다.

그 구절을 읽으며 우리는 다시금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갔다. “우리가 살면서 ‘순수한 눈물’을 흘리는 순간이 있을까?” 이렇게 우리는 정답이 없는 질문, 우리를 비춰주는 질문을 던지며 우리의 경험과 감정을 다양하게 나누었다. 이 소중한 시간이 우리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 새롭게 시작된 한 해를 견디고 살아갈 수 있는 선물 같은 힘이 되어 주기를 바란다.

김건희 대송고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