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생각]새해를 여는 한마디, 희망을 그리다

2025-01-09     경상일보

밤 사이 어두운 소식이 머리를 짓누른다. 뒤 돌아 서울 방향을 보니 도시는 아직 잠들어 있다. 겨울 새벽의 차가운 공기가 스며든 팔당호는 수면 위로 푸르른 안개를 풀어낸다. 뭉치듯 흩어지듯 안개의 흐름을 따라 시선이 먼 산을 향한다. 단색의 명암 변화가 아찔하다. ‘아! 한 폭의 그림이네!’ 나도 모르게 탄성이 터진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그림 같은 풍경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

‘한 폭의 그림 같다 (picturesque)’라는 말은, 미술사적 측면에서, 17세기 프랑스 화가 클로드 로랭(Claude Lorrain)에서 비롯됐다. 당시 화가들은 비속하고 초라한 세상에 그림으로 순수함과 아름다움을 사람들에게 보여줄 방법을 모색했다. 그들의 생각에 그림은 현실보다 더 완벽하고 이상적이어야만 했고, 그리스·로마 시대의 고전 조각과 건축물에서 그 소재를 찾았다. 이들을 신고전주의(Neo-classical)라 한다. 자연의 사실적 표현에 있어 완벽한 기량을 가졌던 클로드 로랭은 금빛 광선이나 은빛 대기 속에 무르녹아 있는 로마의 평원과 언덕이 있는 이상적인 풍경을 그렸다. 로마를 찾은 여행객들은 그의 그림의 기준에 따라서 실제의 풍경을 평가하곤 했다. 어떤 풍경이 클로드의 그림과 유사하다면 한 폭의 그림 같다는 뜻으로 ‘픽처레스크(picturesque)’라고 불렀다.

그 후 네덜란드 시민의 취향에 따라 ‘그림 같은 (픽처레스크)’의 의미도 달라졌다. 네덜란드 번영이 절정에 달했던 17세기 중엽, 시민들 대부분 신교를 믿었다. 그들은 호사스러움보다는 경건하고 근면 절약을 선호했다. 현실 속의 평온하고 수수한 풍경에서 이상적인 것을 찾았다. 지금 우리가 호젓한 시골길을 보고, 동트는 새벽녘 강가의 안개를 보고, 저녁노을에 물들어 가는 고향의 들판을 보고도 ‘그림 같다’라고 하는 이유다.

‘그림같다’라는 말은 단순히 미적인 아름다움을 넘어서, 마음으로 느끼는 조화와 균형, 그리고 우리가 갈망하는 이상적인 삶의 모습이 담겨 있다. 2024년, 그 어느 때보다 혼란스럽고 힘든 시간을 지나면서, 우리는 평온하고 조화로운 새해를 간절히 염원하게 됐다.

이상적인 새해는 어떤 모습일까? 단순한 일상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서로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는 순간에도 완성될 수 있다. 소박하지만 깊은 기쁨을 느끼고, 우리의 마음이 더 넉넉해지고, 어려움을 함께 극복할 수 있는 유대감이 느껴지는 해. 서로의 존재가 위로와 격려가 되는 해. 그런 모습이야말로 ‘그림 같은’ 새해의 진정한 의미가 아닐까?

2025년은 이러한 조화와 평온 속에서 우리의 삶에 잔잔한 행복이 넘치는 한 해가 되기를 조심스럽게 기원한다. 우리 각자가 만들어 갈 ‘그림 같은’ 풍경이 서로의 삶 속에 펼쳐지기를 기대하며 가슴에서 샘물처럼 퐁퐁 터지는 설렘을 안고 2025년 새날을 출발한다.

장훈화 서양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