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루이지 맨지오니가 확신범이 되기까지
2024년 12월4일 오전 6시45분, 미국 뉴욕 맨해튼 54번가에서 세 발의 총성이 울렸다. 피해자는 미국 최대 민영 의료보험회사인 유나이티드헬스케어(UnitedHealthcare)의 대표이사 브라이언 톰슨. 상장기업의 대표이사로서 투자자들에게 경영 성과를 보고하는 설명회 장소로 이동 중이었던 톰슨은 피격 현장에서 사망했고, 회색 백팩에 후드 재킷을 입고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범인은 그로부터 닷새 뒤 펜실베니아 앨투나에서 체포되었다.
범인의 이름은 루이지 맨지오니. 범행 당시 26세의 청년으로 메릴랜드주의 명문 사립고인 길먼 스쿨을 졸업하고 펜실베니아 대학교에서 컴퓨터 과학 전공으로 학위를 취득할 만큼 유복한 환경과 명석한 지성을 갖춘 그는, 이제 뉴욕 주법상 일급살인죄, 펜실베이니아 주법상 불법무기소지죄, 그리고 연방법상 살인 목적 총기 사용죄 등 공소장에 적시된 총 13개의 범죄 혐의에 대한 법의 심판을 앞둔 범죄자가 되었다.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만으로도 모살(謀殺, 계획에 의한 살인)임이 분명한 이 사건은, 전모가 드러날수록 범행의 배경과 동기에 대한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범행에 사용된 총알과 탄피에는 ‘delay’(지연), ‘deny’(거부), ‘defend’(방어), ‘dopose’(퇴진)와 같은 글자가 씌어있었다고 알려졌는데, 이 소식을 들은 미국인들로서는 이것이 미국의 보험업계가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기 위해 사용하는 3대 대응 전략, 즉 피보험자 혹은 보험수익자가 보험금 청구 시 지급을 최대한 지연하고(delay), 어떻게든 사유를 들어 지급을 거부하며(deny), 보험금 지급 청구소송 등 법적 절차를 이용할 경우 적극적으로 항변한다는(defend) 것을 가리키는 메시지임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건강보험 당연지정제에 의거 거의 모든 의료기관이 요양급여 진료를 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공적 의료보험 제도가 없어 사보험에 의존해야 하는 미국인들은 연간 보험료 부담액이 2023년 말 직장가입자 기준 평균 1만5797 달러(한화 약 2300만원)에 달하며, 보험에 가입되어 있다 하더라도 위에서 언급된 전략을 추구하는 보험사의 방침으로 인해 보험금 지급이 거절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이번 사건으로 대표이사가 피살된 유나이티드헬스케어의 경우 보험금 지급 거부 사례는 2022년 전체 청구 기준 3분의 1에 달하였는데, 그 결과 유나이티드헬스케어의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40억 달러(한화 약 5조9000억원) 증가했으며, 톰슨은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23년도 성과급으로 1000만달러(한화 약 150억원)를 받았다.
일상을 살아가는데 적정한 의료 지원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은 다투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돈이 없어 병원을 갈 수 없다면, 통제할 수 없는 재난과 질병이 닥쳤을 때 우리는 속수무책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런 면에서, 퇴임을 앞둔 바이든 대통령이 부통령 재임 시 장남 보 바이든이 뇌종양으로 투병 당시 치료비를 감당할 수 없어 집을 팔려는 것을 오바마 대통령이 극구 만류하며 재정 지원을 해 주었던 일화는, 두 전·현직 대통령의 아름다운 우정은 별론으로 하고, 일국의 부통령도 감당하지 못하는 의료비를 무슨 수로 일반 시민들이 마련할 수 있겠으며, 그런 미국인들의 일상은 얼마나 위태로운 것인가 하는 의심을 할 만큼 충분히 상징적이다.
유복한 기업가 가문에서 태어난 엘리트 청년이 자신의 인생을 파멸시키기에 충분한 범죄의 대가를 치러야 함을 알면서도 신념을 가진 확신범(brazen murder)이 될 결심을 하게 된 배경에는, 3년 전 입은 척추 부상으로 불가능해진 일상과 6개의 철심을 박는 척추전방전위증 수술에도 악화일로로 치닫는 건강 문제가 있었다.
정치를 수단 삼아, 선진화나 합리화 같은 이름으로 교묘하게 추진되는 의료민영화가 도달하려는 종착점은 극대화된 수익이다. 이는 전 국민의 의료권 보장이라는 헌법 가치와 같은 방향일 수 없다. 고단한 일이지만, 사회적 합의가 우리의 일상을 겨누는 흉기가 되지 않게 감시하는 것 역시 민주주의를 선택한 시민들이 함께 나누어서 져야 할 몫이다.
이준희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