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애란의 도서관 산책(1)]오래 머물고 싶은 선바위도서관
울산은 공공도서관 발전에 큰 족적을 남긴 엄대섭 선생의 고향이자 활동을 시작한 곳이다. 그는 50년대 초, 문맹자를 퇴치하기 위해 울산 최초의 사립도서관을 설립했고, 전국적으로 3만개에 이르는 작은도서관 만들기 운동을 펼쳤다. 선바위도서관은 울산을 빛낸 인물로 엄 선생을 선정하고 흉상을 세워 그의 정신을 후대에 전하고 있어 자랑스럽다. 울산에는 21개의 공공도서관과 공·사립작은도서관 191개가 있다. 이곳은 주민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얻고 문화프로그램을 체험하고, 여가를 즐기는 장소이다. 지역에 잘 지은 도서관 하나가 인구를 유입해 지역 소멸을 막고 여행자까지 몰려와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 있다. 어떠한 일을 하고 있기에 이런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나는지 ‘도서관 산책’을 통해 소개한다.
울산시 울주군 범서읍 구영리에 있는 울주선바위도서관은 하루 종일 이용자로 붐빈다. 22만의 도농복합 지역 공동도서관에 하루 2200여 명이 찾는다. 2010년생 한 이용자는 10년 동안 3081권의 도서를 대출해 읽었다고 한다. 지난해 학생 독서량이 연간 1인당 36권인 것에 비하면 놀랍다.
도서관의 모습이 산을 등지고 물을 바라보는 배산임수 지형의 영향일까. 이런 자리는 흔히 학문을 꽃피우고 인물이 난다고 알려져 있다. 풍수지리를 따지지 않아도 건축물과 서비스가 예사롭지 않다. 건축물은 지하 1층, 지상 3층, 연면적 7815㎡ 규모에 장서 19만권을 소장하고 있다. 1층 중앙의 야외 누리 마당은 기둥만으로 떠받친 필로티 구조로 개방과 여백 감이 뛰어나며, 바람길과 채광의 조도를 반영하여 쾌적해 보인다. 테라스는 외부 자연환경과 내부 공간이 자연스럽게 연결돼 책을 읽고 힐링하는 장소로도 제격이다.
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읽고 빌리는 장소를 넘어 자연 속의 편안한 시설에서 시간을 보내는 ‘체류형 도서관’을 닮았다. 자료실이나 복도에는 카페와 캠핑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의자와 소파를 비치해 이용자를 오래 머물게 하고 있다. 앉고 기대고 눕기 쉬운 빈백은 만석이다. 일본의 체류형 명소로 알려진 이시카와현립도서관이 갖춘 100종류의 의자와 소파처럼 유명 전시장의 상품을 갖춘 것은 아니지만 책을 읽고 쉼(놀이)을 추구하는 이용자의 수요를 충족시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도서관은 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전시실과 각 층 복도 곳곳의 이젤에 작품을 전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시실에서는 지역 예술 작가의 사진, 서예, 그림 같은 작품이나 도서관 강좌에 참여한 수강생 작품이 주류이다. 물론, 수강생이 아닌 대학생의 작품을 전시하기도 한다. 미국 콜로라도주에 있는 베일 밸리(Vail Valley)에서 고교생의 작품을 공공도서관에서 전시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학생과 가족의 접근성을 높이고 도서관 이용자도 작품을 공유함으로써 예술적 성장을 촉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 층의 통로 곳곳에 세워진 이젤에는 시와 같은 문학 작품을 전시해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유아자료실 앞에도 매달 그림 동화책 원화가 전시된다. 순천시립그림책도서관처럼 원작 그림을 전문으로 수집하기 어렵다면 출판사가 원화를 스캔한 인쇄본을 전시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 이때 작가의 그림만을 안내하기보다는 작품 의도나 배경 설명, 체험이 있으면 유아나 성인에 이르기까지 그림동화에 더 쉽게 친해질 수 있다.
선바위도서관에서 인기있는 강좌는 웹상에서 만화를 제작하는 웹툰이다. 2014년 도서관이 개관할 당시, 전국의 도서관에서는 메이킹공간(무한상상실)이 새로운 역할로 부상되던 시기였다. 물건을 수작업으로 만드는 것이 아닌, 3D 프린터, 재봉틀, 방송 제작 장비 등을 활용한 공예 작품이나 콘텐츠 제작이 주목을 받았다. 이때 선바위도서관은 제4차 산업혁명을 대비한 창의력 향상을 위해서 2019년 ‘웹툰창작체험관’에 장비를 구축하고 연 21개 프로그램을 개설하여 700여 명에게 웹툰 창작 활동을 지원해 오고 있다.
웹툰 강좌는 스토리 구성부터 전용 프로그램 활용과 프로그램을 활용한 캐릭터 만들기, 캐릭터로 다양한 작품 만들기까지 수업의 수준을 높이고 있다. 초등학교 고학년 이상이면 누구나 교육 수강이 가능하다. 웹툰 강좌를 통해 디지털 활용 능력을 높일 수 있고 새로운 취미나 직업 탐색의 기회가 된다. 웹툰 작가가 되거나 지역문화콘텐츠 산업에 종사하기 위해서는 웹툰 제작에 응용할 수 있는 그림 제작 인공지능 교육까지 확대한다면 보다 특화된 강좌가 될 수 있다.
개관한 지 10년이 된 선바위도서관은 작년 울산시 전체 공공도서관의 운영평가에서 1위를 차지했다. 도서관 측의 운영 노력과 지방자치단체의 예산 지원이 있어 가능했다. 이용자는 시대에 따라 끊임없이 시설과 서비스의 변화를 요구한다. 체류형으로 유명한 핀란드의 오디도서관은 하루 이용자가 7000명이 넘는다. 도서관 건립부터 이용자가 원하는 요구를 반영해서 운영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온종일 도서관에 체류하면서 차를 마시거나 책을 읽는 것은 물론, 재봉틀로 바느질을 배우고, 프린트 기계로 티셔츠에 문양을 넣고, 미디어실에서 자작곡을 만들 수 있다. 또한, 책의 대출 이외에 악기 같은 사물 대여 서비스도 한다. 오디도서관만이 아닌, 세계적인 추세이다.
오늘날 도서관에서는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기 위해 책을 읽고 즐기는 아날로그 세대와 디지털 시설과 장비로 자신만의 차별화된 창작활동을 추구하는 디지털 세대가 상존한다. 선바위도서관이 두 세대의 조화로운 서비스를 위해서 5m 높이의 ‘책 읽는 사람’ 조형물이 있는 야외 누리 마당과 울주군의 명품 길인 선바위도서관 길과 연결된 주차장과 주변을 활용해 ‘야외도서관’을 운영한다면 책과 친해지는 기회를 더욱 넓힐 수 있다. 또한, 기존의 웹툰 강좌 이외에 창작 공간 확대에 따른 장비를 갖추고 세대 통합적인 서비스를 확장한다면 잠재고객을 유치하는 방안이 될 수 있다.
올해 선바위도서관은 누구나 오래 머물고 싶은 체류형 도서관을 만들기 위해 일부 시설 리모델링과 시니어 세대를 위한 프로그램을 신설한다고 하니 그 모습이 더욱 기대된다.
이애란 칼럼니스트 문헌정보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