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칼럼]울산은 벤처도시였다
울산은 국내 제1의 산업도시, 제조업 도시다. 세계적으로도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 비철산업이 한곳에 집중돼 있는 곳은 매우 드물다. 이런 울산의 탄생은 경제개발계획 즉 국가적 아젠다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그 안에는 우리 지역을 연고로 혁신적인 미래 비전으로 기업을 만들어낸 기업가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현대그룹 정주영, SK 최종현, 그리고 지역 기반으로 대기업 수준의 중견기업을 만들고 지역발전에 헌신한 기업가들이 있어서 우리가 큰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울산의 성공 과정은 미국의 샌프란시코의 실리콘밸리와 견줄 수 있는 성공 스토리이고, 최고의 벤처(모험) 정신이 발현된 곳이라 생각된다.
이런 벤처 DNA를 가지고 있는 울산은 지금은 어떠한가? 벤처 정신으로 새로운 분야에 혁신적인 기업의 출현이 가능할까? 1960~90년대 어렵고 힘들 때 파급력이 있는 세계적 기업들이 출현했는데 이젠 울산지역에서 이런 혁신적인 기업의 탄생은 거의 없다. 왜 그럴까하고 생각해 보고 해결책을 고민해 본다.
필자가 재직하는 첨단소재공학부는 10여년 전에 국가 R/D 발전계획과 지역인재 양성 계획에 의해 본교에서 벗어나 남구 두왕동 산학융합지구(캠퍼스)로 이전했다. 산학융합지구의 목적은 산학일체형 울산형 실리콘밸리를 표방 즉 최고의 즉 혁신 클러스터를 만들자는 것이 명확했다. 이곳에 제조산업 혁신을 이끌 3D프린팅 분야를 집중해 유관기관 약 65개 이상 있는 전국 최고의 클러스터 단지를 조성했다. 클러스터 단지를 만들면서 상가 지역, 주거 지역 등도 조성했다.
지금 상황은 어떠한가? 10여년이 지난 상황에서 이들 분야 산업이 제대로 자리도 잡기도 전에 많은 지역, 국가적 정책 변화 등으로 융합지구 부근의 발전계획은 아직 완벽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당연 이곳에 처음 자리 잡은 3D프린팅 벤처기업들은 자리도 잡기도 전에 다시 사업을 접거나 지역을 떠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문제는 다른 분야도 이런 식으로 진행되면 새로운 창업 시도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성공 역사는 1939년 HP가 자리 잡고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나 1970년대에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수많은 기업의 흥망성쇠가 있었지만 오랜 시간 지속돼 벤처 클러스터의 대명사가 된 것이다. 우리는 너무나도 빠른 성과를 기대하고 성과가 없으면 처음 기획했던 내용들이 지워지고 그 위에 다른 것이 덧쓰이는 정책이 이루어진다. 이런 식이라면 처음 참여했던 기업가들은 당연히 도시를 떠나가게 된다. 우리 시는 4대 주력 산업 이외에 다양한 분야에서 혁신을 꾀하고 있다. 2차전지/에너지, UAM/모빌리티, AI/빅테이터, 게놈/바이오산업… 그런데 3D프린팅처럼 많은 벤처기업들이 의욕 차게 왔다가 지역을 떠나게 되면 앞으로 어떠한 다른 분야의 미래도 밝지 않다.
필자는 3D프린팅 벤처창업자들과의 시간을 많이 가지고, 우리 지역 벤처창업과 여건에 관해 물어본다. 정책지원, 자금지원 등의 다양한 얘기가 나온다. 하지만 이구동성으로 꼭 나오는 얘기는 정주 여건과 교통 여건이다. 3D프린팅 분야를 비롯한 벤처기업 특성상 젊은 연구자들과 여성 비율이 상당히 높다. 이들은 아직 자가(自家)가 없고, 자가용도 없다. 융합지구에 이런 여건이 젊은이들이 모이기 쉽지 않다는 뜻이다. 두왕동 융합지구가 장기적으로 젊은이들이 모이는 벤처 지역이 되려면 향후 시의 청년주택 조성사업, 수소트램과 연계돼 젊음 이들이 쉽게 정주하고 접근할 수 있는 여건이 돼야 할 것이다.
우리 울산은 지역소멸이 급격하게 일어나고 있는 현 상황에서 기존의 강력한 산업 기반을 바탕으로 새로운 벤처 도시로 성장할 수 있는 유리한 도시라고 판단된다. 안정적으로 현실에 안주해도 된다. 하지만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서는 초창기 울산의 벤처 도시 DNA를 발현할 수 있는 정책과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추진한다면, 울산은 혁신적인 벤처 도시로 다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된다.
김진천 울산대학교 첨단소재공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