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숙 시인의 월요시담(詩談)]서수찬 ‘버스 기사 S시인의 운행일지’

2025-02-03     차형석 기자

소래를 지나가는 버스는
아직도 불심검문을 한다
무슨 사상을 숨기고 다니는 것도 아닌데
죄다 검은 비닐봉지에다
꽃게나 새우를 숨기고 탄다
문제는 꽃게나 새우가
집게다리나 수염을 이용해서 슬그머니
승객들에게 냄새 테러를 가한다는데 있다
지독하다
그러니까 검은 비닐봉지는
사상을 가린다
소래 어물전 상인들도
무슨 부끄러워할 일도 아닌데
하루 종일 일한 작업복과
작업복을 따라온 비린내를
검은 비닐봉지에다 숨기고 타는지
검문하면 화부터 낸다
소래 사람도 못 믿냐고
그래 검은 비닐봉지가 당신들을
못 믿게 만든다고
시인들도 못 믿냐고
그래 당신들이 쓴 시가
검은 비닐봉지처럼 모두 다 가려서
그런다고


노동의 흔적조차 숨길 수밖에 없는 현실

짐 자무시 감독의 ‘패터슨’은 미국 뉴저지주의 소도시 패터슨에 사는 버스 기사 패터슨의 일상을 그린 영화이다. 패터슨은 매일 별다른 것 없는 일상을 시로 표현하며 소소한 기쁨을 누린다. 이 시를 쓴 시인도 패터슨처럼 운전기사이다. 어시장이 유명한 소래포구를 지나는 노선을 운행하는지, 어물전 상인이나 손님들이 주요 승객이다. 하지만 시인의 시선은 패터슨보다 좀 더 냉정하고 비판적인 편이다.

이 시에는 ‘검은 비닐봉지’가 주요 알레고리로 등장한다. 그것은 해산물과 비린내를 숨기려는 도구로, 승객이나 상인들이 노동과 삶의 현장에서 풍기는 냄새를 가리는 역할을 한다. 이렇게 진실을 숨기는 일은 ‘불심검문’으로 인해서이다. 군사정권 시절의 감시와 통제를 연상시키는 이 단어는 일상에서 지속되는 불신을 의미한다.

사상, 그러니까 무슨 ‘이즘’은 별 게 아닌데, 가장 중요한 것은 먹고사니즘인데, 노동의 냄새와 거친 손을 떳떳이 드러낼 수 있어야 하는데, 하지만 불심검문으로 야기된 불신과 자기검열, 그러니까 검은 비닐봉지는 현실을 솔직히 드러내는 것을 막고 은폐하며 부끄러워하게 한다. 그것은 가장 진실해야 할 시조차도 가려버린다. 송은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