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운명적 사랑의 비극, 영화 ‘엘비라 마디간’

2025-02-04     경상일보

사랑과 운명은 우리에게 근원적인 질문을 동반하게 한다. 사랑이란 생을 풍요롭고 아름다운 감정으로 채워 주지만, 때로는 현실의 벽에서 절망하며 쓰러지는 연약함도 있다. 운명은 우리가 선택할 수 없는 환경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그 환경을 거부하거나 초월하려는 의지를 갖는 경우도 많다. 사랑과 이별, 이상과 현실, 자유와 억압 등의 충돌은 언제나 고뇌를 부르는 철학적 주제라 할 수 있다. 사랑과 운명은 마치 두 개의 평행선과 같다.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해가는 듯 보이지만, 힘들게 가까워지기도 하고 쉽게 멀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들은 시대를 넘어 존재해왔으며 문학과 예술 그리고 철학에서 자주 다루어져 왔다. 인간은 사랑을 만나게 되면서 속박을 벗어난 자유를 갈망하지만, 운명은 그러한 시도를 용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때때로 절망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 갈등과 균형에서 생존의 의미는 빛나거나 흐려진다.

바로 이러한 여러 사고를 떠올리게 하는 영화가 ‘엘비라 마디간’(1967)이다.

영화는 한 쌍의 연인이 현실을 외면한 사랑을 꿈꾸다가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 되는 것으로 실화를 바탕으로 하였다. 19세기 스웨덴을 배경으로, 사회적 규범과 생존이라는 어려움에서 좌절하는 애심과 자유를 그려낸다. 주인공인 엘비라 마디간은 유럽에서 유명한 서커스 곡예사이고, 그녀와 연인인 식스틴 스파레 장교는 전쟁의 혐오감과 무상함으로 아내와 두 아이를 버린 채 탈영한 부유한 집안의 군인이다. 두 사람은 기존의 질서와 규제에서 벗어나 순수한 감정을 택하지만, 그들이 견뎌야 하는 환경은 너무나 가혹했다.

배경은 아름답고 감상적이며 낭만적이다.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1번 2악장으로 애절하고 처절한 서정적 감성을 담고 있다. 엘비라와 식스틴은 도피 생활을 시작한다. 햇살이 내리쬐는 들판, 숲속의 고요하고 평화로운 순간들은 꾸밈없는 완벽히 둘만을 위한 공간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돈이 떨어지고 식량이 부족해지며, 목숨의 위협을 받는다. 점점 조여오는 압박과 위기감은 슬픔과 고통을 더해간다. 결국 죽음으로서 불멸의 사랑을 향하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엘비라 마디간은 운명과 자유의 상관관계를 묻는다. 인간은 자유를 갈망하면서도 당면한 세상을 간과할 순 없는 것이다. 엘비라와 식스틴은 사회적 책임과 본분에서 벗어나 서로를 의지했지만, 비관과 고립만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것은 실존주의 철학에서 논의되는 인간의 선택과 책임의 문제를 떠올리게 한다. 사르트르는 “인간은 자유롭게 선택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 하였다. 자유가 곧 책임이다.

엘비라와 식스틴은 자유라는 구역을 차지했지만, 마주해야 하는 세상은 냉혹하였다. 사랑은 숭고하지만, 그들을 가로막고 있는 문제들을 벗어나기엔 역부족이었다. 이것은 운명을 헤치며 나아가려고 할 때 거쳐야 하는 본질적 딜레마를 의미한다. 영상에서는 이상과 현실의 마찰을 보여준다. 엘비라와 식스틴은 경제적 어려움과 외부적 압박을 이겨낼 수 있는 아무런 대비도 없었다. 이것은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기억하게 한다. 플라톤은 완전하고 영원하며 변하지 않는 진리로 가득한 이상적인 세계와 감각을 통해 경험하고 끊임없이 변화하고 일시적이며 불완전한 존재로 이루어져 있는 현실 세계로 구분된다고 보았다. 엘비라와 식스틴의 사랑과 꿈은 이상적인 세계에 속한다고 하겠지만, 그들이 살아 움직이는 곳은 현실 세계인 것이다. 이러한 대립에서 인간의 한계를 느끼게 된다. 이상은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일 뿐이다.

‘엘비라 마디간’은 비운의 안타까움을 남기면서 사랑과 자유, 이상과 현실, 희망과 절망 그리고 운명의 불가피함을 경험하게 한다. 자유와 책임의 상호작용을 보여준다. 아무리 위대한 사랑도 감각적 세계를 벗어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가 동경하는 사랑은 바로 이러한 이상적인 숲을 거닐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랑해본 적이 없는 사람은 일생을 가난한 감성으로 살 것이지만 사랑해본 적이 있는 사람은 일생을 풍요롭고 아름다운 감성을 누리며 살 것이다. 사랑은 죽음을 능가할 수 있다.

김진 김진명리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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