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생각]작은 것들을 위한 시

2025-02-20     경상일보

최근 “어쩔 수 없다”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곤 한다. 내가 살아가면서 통제할 수 없는 일에 대한 체념이지만, 묘하게도 안도감을 주는 말이기도 하다. 할 수 없는 일을 받아들이고 순응하는 일은 변화를 애쓰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말 속에는 자신의 선택 가능성과 잠재력을 외면하고, 현실의 무게 아래 스스로를 집어넣고 있음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삶을 “어쩔 수 없다”가 아니라 “어쩔 수 있다”의 관점으로 바라본다면 어떨까? 무엇이 선행돼야 할까? 그것은 바로 용기라고 생각한다. 단지 두려움에 맞서는 힘이 아니라, 선택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그것을 실행으로 옮기는 능력 말이다. 최근 읽은 클레어 키건의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Small things like these)>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작은 ‘어쩔 수 있는’일을 하기 위해 용기를 내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아일랜드의 작은 마을에 사는 빌 펄롱은 석탄과 나무를 배달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평범한 가장이다. 그는 우연히 근처 수녀원에서 착취와 학대의 흔적을 목격한다. 당시 막강한 천주교의 세력 아래 있었던 수녀원이었기에, 마을 사람들은 침묵한다. 하지만 빌은 불의에 대한 침묵이 지금의 상황을 만들었음을 안다. 그는 이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정말 있을까? 고민한다. 자신이 가진 위치와 힘은 너무 작아 보였고, 자신이 나서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을지 확신 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소설의 마지막은 그가 용기를 내어 학대 당한 어린 소녀를 구하기로 결심하면서 마무리된다.

이 책의 표지는 16세기 네덜란드 화가 피터 브뢰헬의 <눈 속의 사냥꾼>의 일부분이다. 당시 소빙하기였던 유럽은 사람이 살아가기 힘들었다. 눈 덮인 마을로 들어서는 사냥꾼의 축 늘어진 어깨, 죽음을 암시하는 새 떼들, 언제 깨질 줄 모르는 얼음 위에 사람들. 자세히 보니 그림의 작은 부분에 한 아낙이 보인다. 땔감을 잔뜩 짊어지고 추운 겨울 속을 횡단한다. 그녀가 빙하를 녹일 생각이었을까? 아니다. 아낙은 가족에게 잠시라도 따뜻함을 주고 싶어 자신이 할 수 있는 ‘어쩔 수 있는 일’을 한 것이다. 전체적인 암울한 분위기 속에서도 이 작은 것들은 그림을 보는 사람에게 어둠 속에서 한 줄기의 빛을 선사한다.

“어쩔 수 없다”는 말은 체념과 타협의 표현일 수 있지만, “어쩔 수 있는 일”은 다른 차원의 선택을 요구한다. 그것은 우리 손 안에 작지만 중요한 가능성이 있음을 의미한다. 이제 다시 묻자. 당신이 현재 마주한 문제는 정말 어쩔 수 없는 것인가? 아니면 그것을 실행할 용기가 부족한 것인가? 만약 용기가 필요하다면 대단한 결단 일 필요는 없다. 한 발짝 내디디는 걸음으로 충분하다. 당신이 온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최소한 당신의 세상은 바꿀 수 있다.

장훈화 서양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