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강]다시 불리운 이름 ‘병원집 막내딸’
작년 10월 초 재경 울산향우회가 주최한 1박 2일간의 고향방문 행사에 함께 했다. 친척들이 울산에 있지만 서울에 살다 보니 자주 가지는 못한다. 고향의 발전된 모습을 둘러보고 고향의 정을 듬뿍 느낄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오랜만에 찾은 ‘대왕암, 십리대밭 태화강국가정원, 반구대 암각화’ 그리고 인근의 양산 통도사는 훌륭한 관광 코스였다. 대왕암은 여전히 천혜의 절경을 자랑하고, 십리대밭 길은 이름 그대로 길게 뻗은 대나무 숲길이 일품이었다. 반구대 암각화는 선사시대 문화를 상징하는 울산의 자랑이자 세계적 문화유산이라는 점을 다시 일깨워 주었다.
울산이 단순한 산업도시가 아니라 역사와 문화를 품은 곳임을 새삼 깨닫는 시간이었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다녀가야 할 곳이 아닌가’ 하는 자부심마저 들었다.
첫날 저녁에 고향 어른들이 마련해 준 환영행사에서 내가 태어나고 자란 성남동 출신의 여러 분들을 만났다. 인사를 나누다 보니 하나같이 아버지가 운영하던 병원을 기억해 주셨다. 자연스레 나는 ‘ㅇㅇ병원집 막내딸’로 소개되었다. 오랫동안 잊었던 그 호칭이 어찌나 반갑고 정겹든지 가슴이 뭉클해졌다. 이름 대신 ‘누구집 딸’로 불리는 것은 그 집에 대한 신뢰가 담겨 있다는 징표다.
행사하는 동안 어린 시절로 자연스레 걸어 들어갔다. 성남동에 있던 아버지의 병원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우리 가족의 삶의 중심이었다. 그때의 정경들이 마치 어제의 일처럼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아버지의 진료실은 어린 나에게는 신기한 세계였다. 책상 위에는 청진기와 작은 손전등이 놓여 있었고, 약장에는 형형색색의 약병들이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었다. 병원 안은 특유의 알코올 냄새로 가득했지만, 나에겐 편안한 향기였다.
아버지가 진료실에서 환자분의 손을 잡고 이야기를 들어주던 모습이 떠오른다. 진료가 끝난 후에도 아버지가 책상에 앉아 진료 일지를 들여다보시거나 책을 읽으셨다. 가끔은 병원에서 주사를 맞고 나온 친구들과 마주칠 때가 있었다.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가끔은 눈물까지 흘리고 나오는 친구들을 보면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나는 병원에 익숙했지만, 친구들에게는 병원이 무섭고 낯선 곳이었으니까.
동네 병원이다 보니 밤늦게 찾아오는 환자들도 많았다. 한밤중 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잠을 설치게 만들어서 싫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픈 사람에게는 밤낮이 없다”고 하시면서 정성껏 환자를 돌보셨다. 밤에 아파도 병원 찾기가 쉽지 않은 요즘과 비교해 보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어머니 역시 유리 주사기를 일일이 직접 열탕으로 소독하시며 도우셨는데 그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고향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언제나 가슴 속에 흐르는 멜로디와 같다.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러도 어딘가에서 선명하게 울려 나오는 익숙한 선율처럼 다가온다. 울산은 더 커지고 현대적인 도시로 변했지만, 그 안에 깃든 정과 온기는 옛날 그대로였다. 변함없이 나를 감싸주고 언제든지 돌아오면 따뜻하게 맞아줄 안식처다.
시간이 지났고 내 생활의 터전과 멀리 떨어져 있어도, 고향을 떠올릴 때면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간절해지고 애정은 더욱 깊어지는 것 같다. 골목길을 메웠던 웃음소리, 분주하게 움직이던 시장의 풍경, 바람에 실려 오는 바다 내음까지 가슴 속에서 되살아난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 서려 있고 내 감성을 키워준 울산은 내 삶의 일부이고 뿌리다. 바쁜 일상속에서도 언제나 위안을 준다. 다시 불리운 정겨운 이름 ‘병원집 막내딸’에서 고향의 정을 느낀다. 영원한 ‘울산 큰애기’로서 그 정을 가슴에 안고 살아갈 것이다.
김희경 해당화 아코밴드 단장 재경울산여고 동문회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