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초현실 사회를 넘어

2025-03-05     경상일보

요즘 어디를 가든 누구를 만나든 마음이 편치 않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는 약물에 중독된 듯 방향을 잃고 비틀거린다. 온갖 가짜뉴스가 다투어 범람하고 뒤틀린 욕망이 이에 편승해 섬뜩한 발톱을 드러낸다. 뭐가 진실인지 뭐가 거짓인지는 관심 밖이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으면 편하고 유리해서일 것이다.

‘대국민 호소용’이라는 12·3 비상계엄 이후 벌어진 상황은 유례를 찾기 어려운 ‘초현실적’ 현실이다. 권력 집단의 궤변과 거짓말이 공정과 상식, 자유와 안보라는 포장지 속에 감춰두었던 추악한 실체를 여지없이 드러낸다. 저들에겐 ‘미래의 바다에 낚싯바늘을 던지는’ 일은 환상일 뿐이고, ‘비극으로 통하는 지옥문을 여는’ 것이 현실인 모양이다.

왜 이런 상황이 벌어진 걸까? 독립 선언 106주년 3·1절을 맞아 자괴감이 밀려온다. 우리의 굴곡진 역사와 피폐한 심성 속에 잉태한 ‘괴물’이 출현한 것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해방 이후 군부독재 해체까지 독재와 민주, 반북과 친북, 친미와 반미, 친일과 반일 등 구호를 내세운 살벌한 다툼에서 고질적 불신과 적대감은 칙칙한 늪처럼 우리의 정신과 삶을 옭아맸다.

그런데도 우리는 따스한 햇볕과 신선한 공기를 찾아 길고 어두운 터널을 걷고 또 걸었다. 그 고난의 행군에서 어렵게 이루어낸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을 세계인은 칭송했고, 우리는 슬기롭고 창조적인 민족이라는 긍지와 자부심을 느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여전히 거짓과 위선, 야비함과 뻔뻔함, 교만함과 비굴함을 자양분 삼아 사회를 오염시키는 협잡꾼이 비루한 민낯을 드러낸다. 저들에겐 최소한의 상식도 양심도 없으며 사회적 가치의 전복과 진실 왜곡이 일상인 듯하다. 일제와 독재에 부역하며 사리사욕을 좇던 족속의 후예라는 주장도 있다. 역사의 끝자락에 매달린 자들의 마지막 몸부림처럼 보여 딱하다.

‘우물 안 개구리(井底之蛙)’라는 말이 있다. 전국시대 장자(莊子)의 추수편(秋水編)에 나오는 얘기다: 가을비가 내려 온갖 냇물이 황하로 흘러들어 장관을 이루었다. 황하의 신 하백이 굽어보니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진 듯 흐뭇했다. 기쁜 마음에 물을 따라 동쪽으로 가다가 북해에 이르렀는데, 그곳은 물의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장관이었다. 하백은 두리번거리다가 북해의 신 북해약에게 한숨을 지으며 말했다. “‘속담에 백 가지 이치를 듣고 나서 자기를 따라올 자가 없다고 생각한다’라는 말이 있는데, 바로 저를 두고 한 말이었습니다. 지금 북해약님의 무한한 모습을 보고 나서야 제가 이것을 보지 않았으면 큰일 날 뻔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두고두고 큰 도를 깨우친 사람들의 비웃음을 살 뻔했습니다.” 북해약이 대답했다. “우물 안 개구리에게는 바다를 설명할 수 없다. 우물이라는 공간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견문이 좁고 세상 형편에 어두운 사람을 비유한 것이다. 우리 사회 ‘엘리트’의 역사의식 빈곤과 탐욕과 어리석음이 노출된 작금의 세태를 꼬집은 듯해 멋쩍다.

물론 누구에게나 ‘인식의 한계’는 있기 마련이다. 문제는 그 의미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이해하려 하지 않거나, 이해하고도 악의적으로 이용한다는 점이다. 특히 헌법재판소에서 피고소인과 일부 변호인이 보여준 태도는 이 중 일부 혹은 전체에 해당하지 싶다.

그런데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은 모종의 피해의식과 허영심이라는 생각이다. 사실을 왜곡하고, 거짓말을 일삼으며, 책임을 전가하는 비열한 행동의 뿌리에는 ‘온갖 비극의 어머니인 상처 난 허영심’이 자리하고 있다는 말이다. 우리 사회는 극단적인 말을 하는 사람이 신뢰받고, 반대파가 좋은 의견을 내놓아도 무조건 부정하고, 남의 약점을 이용하는 사람이 영리하게 여겨지고, 함께 행한 비리에 기초하여 인간관계가 형성되고, 온갖 불법과 무도함이 당연시되는 가치전도 현상이 만연하고 있다. 공권력이 그런 병적 상황을 부추기거나 숙주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 참담하다.

다행히 건강한 삶을 살아내기 위한 용기와 헌신이 우리 사회의 빛나는 전통이며, 이미 주류로 자리 잡고 있다. 건강한 사람은 ‘더러운 잔을 마시고, 더러운 물로 씻어도 건강을 잃지 않으며, 오히려 더욱 강해진다’라고 한다. 지금 시점에서, 우리의 핏속에 흐르는 노예근성을 뽑아내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솟아오르는’ 미래를 꿈꾸자 말하면 사치일까.

김정배 전 울산문화재단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