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철호의 反求諸己(103)]‘국민’, 그 한없는 가벼움
‘국민의 뜻에 따라서’ ‘국민의 편에 서서’ ‘국민만 보고 가겠습니다’ ‘국민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국민 속으로’ 등은 한국 사람이 평소에 자주 듣는 말이다. 저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국민에 의해서 일정한 권한을 부여받은 사람들이다. 그런데 가끔 그들로부터 저런 말을 들을 때면 화나거나 웃음이 난다. 화는 말과 행동이 달라서 나고, 웃음은 어처구니가 없어서이다.
국민의 뜻을 왜곡하거나 잘 따르지 않는 사람, 국민의 반대편에 서서 국민에게 해악을 끼치는 사람, 국민을 보기보다는 자기 이익만 좇는 사람,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주로 저런 말을 쓰기 때문이다. 국민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사람이라면 받은 권한의 크기만큼 책임도 크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제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이다. 권력이라는 단어는 헌법 제1조 제2항 외에는 나오지 않는다. 이후의 모든 헌법 조항은 권력이 아니라 ‘권한’이다.
즉,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를 비롯한 국가의 모든 헌법기관의 행위는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을 한정적으로 행사하는 것일 뿐이다. 그런데도 자기에게 권한을 준 그 국민을 자기 이익을 위한 도구 정도로 생각하면서 교만한 마음으로 낮추어 보거나 하찮게 여기는 것이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요즘 ‘국민’이라는 단어가 한없이 가볍게 쓰인다. 그 무엇보다 무거워야 할 국민이라는 단어가 그 무엇보다 가볍게 쓰이는 것이다. 자신에게 권한을 준 국민을 어렵게 생각하고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올바르게 그 권한을 행사해야 할 사람들이 ‘국민’이라는 단어를 조자룡 헌창 쓰듯이 마구잡이로 쓰는 현실이 안타깝다.
헌법 제1조 제2항을 ‘국민으로부터 권한을 부여받은 사람들은 그 권한을 준 국민에게는 권력을 자유롭게 행사해도 된다’라고 고치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국민이라는 단어는 친근하게, 그러나 한없이 무겁게 사용되어야 한다.
송철호 한국지역문화연구원장·문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