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인을 만나다]전통에 현대적 감각 콜라보, 세계인 이목 사로잡아

2025-03-07     이춘봉

명품의 사전적 정의는 ‘오랜 기간 동안 상품적 가치와 브랜드 밸류를 인정받은 고급품’이다.

LVMH나 Chanel S.A.S. 등 유수의 명품 브랜드들은 천문학적인 부를 창출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다.

이런 명품 시장에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대한민국의 하나뿐인 문화브랜드’라는 기치를 내세운 울산의 칠보 브랜드 ‘클로이수(Cloisoo)’가 입지를 넓히고 있다.

클로이수는 연내 국내 최고 수준의 백화점 명품관 입점을 앞두고 있다. 그 중심에는 클로이수의 역사를 써내려 온 이수경 명인이 있다.

칠보(七寶)는 금·은·청옥·수정·진주·마노·호박의 일곱 가지 보석 빛깔을 낸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사람이 만든 가장 아름다운 보석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 명인은 1968년 3월 낙선재에서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 이은의 부인인 이방자 여사로부터 남편인 고 김익선 고문과 함께 칠보 제작을 사사했다. 이후 태화강 명촌교 나루터에서 칠보를 생산했다는 기록을 본 뒤 울산에 내려와 터를 잡고 지금의 클로이수를 키웠다.

반세기 넘게 작업에 매진 중인 그는 칠보의 색채에 매료돼 지겨움을 느낄 겨를이 없다고 말했다.

이 명인은 “칠보를 접하기 전까지는 고전을 좋아하는 문학소녀였다”며 “칠보와 인연을 맺은 뒤 천연보석을 능가하는 아름다운 색상에 매력을 느꼈고, 그런 색상을 만들어내기 위해 평생을 바쳤다”고 설명했다. 이어 “물감으로 그린 세계적인 명화는 세월이 가면 색이 바래지만 칠보는 수천 년이 흘러도 그대로라 너무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칠보의 화려한 색채는 세계인들의 시선을 끌어왔다. 1976년 주한 스위스 대사였던 두드리 대사는 이 명인을 스위스로 초청해 칠보 시계를 제작하자는 제안을 했다. 미국 뉴욕 프리미엄 국제박람회, 오사카 국제박람회 등에도 출품해 세계 각국의 찬사를 받았다. 중동과의 인연도 각별하다. 두바이 국제 보석박람회 참가 이후 UAE 국경일 행사에 단골로 초대돼 왕족 등을 대상으로 칠보의 매력을 뽐내고 있다.

이 명인은 칠보의 세계적인 인기에 대해 “중동은 물론 유럽인들도 칠보를 만들지는 못하지만 좋아한다”며 “전통을 기반으로 현대적 감각을 콜라보한 기술력이 세계인의 이목을 사로잡은 비결”이라고 자평했다.

이 명인은 칠보의 생명은 색상의 조화라고 강조했다. 그는 “물감을 사용해 새로운 색상을 창출하는 서양화와 달리 칠보는 재료를 섞어 색깔을 만들 수 없다”며 “자연스러운 색상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연구하다 보니 58년이 쏜살처럼 지나갔다”며 웃었다.

화려한 결과물을 남기기 위한 지난한 작업 과정도 토로했다. 이 명인은 “칠보는 한 번에 구워서 끝나는 게 아니다. 큰 액자는 700~800℃ 고온에서 적게는 10번, 많게는 15번을 구워야 한다”며 “유약도 제각각이고, 금속의 녹는점도 다르다 보니 많은 연구가 필요한 작업”이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 명인은 그동안 셀 수 없이 많은 작품을 만들었지만 매 작업 때마다 세상에서 하나뿐인 명품을 만들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웠다고 회상했다.

이 명인은 “명품 칠보는 독창적인 디자인에 퀄리티를 가미해야 한다”며 “수백 년이 지나도 남아 있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매번 정성을 다한다. 소품이든 대작이든 소장자가 보기만 해도 행복하도록 기도하면서 작업한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칠보를 공예품이라며 다소 낮춰 표현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이 명인은 “수작업을 거치니 공예이긴 하다. 하지만 까르띠에나 루이비통 같은 세계적인 명품들도 공예에서 시작해 명품으로 발전했다”며 “공예로 머물지 않고 끝없이 업그레이드한 결과가 바로 오늘의 명품 브랜드를 탄생시킨 것인데, 클로이수 역시 그런 과정을 밟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이 명인은 올해로 팔순을 맞는다. 세밀한 공정을 하기에 다소 나이가 많다는 생각이 들 법도 한데 철저한 자기관리로 이를 극복하고 있다. 이 명인은 새벽에 일어난 뒤 기도와 명상을 하고, 목욕 후 운동하는 루틴을 20년째 지키고 있다고 한다. 이 때문인지 이 명인은 젊은 남성도 한 손으로 들기 어려운 작업품을 번쩍 들며 노익장을 과시하기도 했다.

이 명인의 아들과 며느리도 클로이수의 일원이다. 아들인 김홍범 대표는 경영을 담당하고, 며느리인 김성미 이사는 작업을 전수받고 있다.

이 명인은 “며느리는 센스가 있어서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안다. 손도 빠른 편”이라며 “작업량이 워낙 많아 며느리를 혹사시키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 때가 많다”고 말했다.

이 명인은 자신을 클로이수의 2대 장인이라고 소개했다. 초대는 남편인 고 김익선 고문, 3대는 현재 전수자인 며느리 김성미 이사다. 이 명인은 3대를 이어오면서 가장 중요하게 지켜온, 또 앞으로 지켜가야 할 원칙으로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들었다.

이 명인은 “칠보가 현대로 오면서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칠보의 전통이랄까 근본은 지켜야 한다”면서 “여기에 현대적인 감각을 결합해 사람에 대한 진심을 담을 때 보는 이들에게 행복을 주는 작품이 탄생할 수 있다”고 힘줘 말했다.

그는 예술가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정직하고 진실된 마음을 간직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명인은 “예술은 결국 사람이 중심이 돼야 하고, 작품을 통해 그 마음이 전달돼야 한다고 믿는다. 매일의 기도와 명상을 통해 자기를 성찰하고, 그 과정에서 얻은 지혜를 작품에 담아내려 노력하고 있다”며 “이런 정신적 수양이 없다면, 진정한 예술 작품은 탄생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아름다운 마음으로 만든 작품을 통해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진실한 작가가 되고 싶다”고 염원했다.

반복되는 작업에 지칠 법도 하지만 그의 열정은 여전하다.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즉석에서 스케치를 남기는데, 여의치 않을 때는 휴지도 화폭이 된다.

이수경 명인은 “이제는 자화상 같은, 개인을 돌아보는 작품을 남기고 싶다”며 “건축에도 도전하고 싶다. 기둥과 샹들리에는 물론 외관까지 칠보로 장식한 집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이춘봉기자 bong@ks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