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강]선계후란(先鷄後卵)과 수도권 집중화

2025-03-10     경상일보

한국 사회에서 수도권 집중화는 오랜 시간 논의돼 온 문제이며, 이에 따른 지역 산업의 몰락과 지역 소멸도 심각한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고 있다. 그렇다면 수도권 집중화가 먼저일까, 아니면 지역 산업의 몰락이 먼저일까? 이는 마치 ‘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인가’와 같은 논쟁적 질문이다. 그러나 ‘선계후란(先鷄後卵)’의 관점에서 본다면, 수도권 집중화와 지역균형 발전의 실패가 먼저이고, 그로 인해 지역 산업의 쇠퇴와 지역 소멸이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선계후란’이라는 고사는 본래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논란에서 유래한 것으로, 어떤 일이 발생하는 원인과 결과를 따지는 데 자주 인용된다. 이는 특히 인과관계를 설명하는 데 유용한 개념이다. 수도권 집중화와 지역 소멸의 관계에서도 이 고사를 적용해 볼 수 있다. 단순히 “지역 산업이 경쟁력을 잃어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수도권 집중화로 인해 지역 경제가 위축되고, 기업이 줄어들며, 결국 지역이 소멸하는 것”이 근본적인 인과관계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수도권 집중화는 한국 경제 성장 과정에서 점점 심화됐다. 1960년대 이후 산업화 정책은 수도권에 인구와 자원을 집중시키는 방식으로 이뤄졌고, 이는 자연스럽게 대기업과 주요 기관이 서울과 수도권에 몰리는 결과를 낳았다. 그 결과, 수도권은 더 많은 기회와 인프라를 제공할 수 있었고, 청년층과 기업들은 더 나은 조건을 찾아 수도권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수도권이 발전하면서 지역 기업들은 점점 수도권으로 이전하거나 경쟁력을 상실했다. 수도권에서는 더 나은 인재를 확보할 수 있고, 다양한 네트워크와 자본 접근성이 뛰어나기 때문에 기업들은 수도권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지역의 주요 산업들이 쇠퇴하기 시작했고, 새로운 산업이 지역에서 성장하기 어려운 구조가 형성됐다.

지역 산업 경제가 위축되면, 지역 대학들도 경쟁력을 잃게 된다. 기업이 부족해지면서 취업 기회가 줄어들고, 결국 우수한 학생들은 수도권 대학을 선택하게 된다. 이는 다시 지역의 인재 유출로 이어지며, 지역의 경제 기반을 더욱 약화하는 악순환을 만든다. 지역 대학이 쇠퇴하면 지역의 연구개발(R&D) 역량도 약해지고, 산업의 혁신과 성장이 더욱 어려워진다.

결국, 지역 산업의 몰락이 지역 소멸을 야기한 것이 아니라, 수도권 집중화가 지역 경제를 위축시키고 기업과 대학을 쇠퇴하게 만든 것이 근본적인 원인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지역 소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지역 기업과 산업을 지원하는 정책을 넘어, 수도권 집중화를 완화하고 지역 균형 발전을 실현하는 근본적인 정책 변화가 필요하다. 이제 다시 수도권으로의 자원 집중을 막고, 지방정부의 재정 및 정책적 자율성을 강화해야 한다. 멈칫하던 주요 공공기관과 연구소, 대기업의 지방 이전을 적극 추진해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유도해야 하며, 지역 특성에 맞는 산업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또한, 지역 내 창업 및 중소기업 지원을 확대해 지역 산업과 경제의 자생력을 높여야 한다. 아울러 개방적으로 지역 대학과 산업 간 협력(Open UIC)을 강화해 졸업생들이 지역에서 정주, 취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하며, 연구개발(R&D) 지원을 확대해 지역 대학이 혁신의 중심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선계후란의 논리를 적용해 본다면 수도권 집중화와 지역균형 발전의 실패가 먼저이고, 그 결과로 지역 산업 몰락과 지역 소멸이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지역 소멸을 막기 위해서는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고,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한 실질적인 정책을 마련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수도권과 지방이 상생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해야 하며, 이를 위한 적극적인 정책 개입이 필요하다. 단순히 지역 산업을 지원하는 것을 넘어, 수도권 집중 자체를 해결해야만 지역 경제의 재건과 지속가능한 발전이 가능할 것이다. 지금 전국적으로 펼쳐지는 RISE(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 사업도 이러한 관점에서 지원될 필요가 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남호수 동서대학교 교학부총장 스마트모빌리티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