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면주칼럼]심리미진(審理未盡)

2025-03-11     경상일보

경칩(驚蟄) 무렵의 함박눈으로 겨울의 끝자락을 털어내고 봄기운이 완연하다. 우리네 세상사는 아직 불사춘(不似春)이다. 요즘 모임에는 정치 이야기는 피하고자 하는 눈치들이다. 술이 한 순배 돌아가면 결국 정국에 대한 열변의 자리가 되고 만다. 거리에 내몰린 국민의 스트레스 비용을 정치인들에게 손해배상 청구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변호사로서는 솔깃한 이야기다.

우여곡절 끝에 대통령에 대한 헌법 재판은 심리를 종결하고 선고만 남겨두고 있다. 아쉽게도 초대 헌법재판연구소 이사장을 역임한 허영 석좌교수는 심리 과정의 열 가지 위법사례를 지적하며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심리 종결 후에도 핵심 쟁점인 국회의원의 체포 지시와 관련된 주요 증인에 대한 협박, 회유 정황과 전 국정원 1차장이 제시한 메모가 조작된 의심이 특종으로 보도됐다. 뿐만 아니라 중앙지법의 구속취소 결정으로 대통령은 관저로 복귀했다. 그 사유는 공수처의 내란죄에 대한 수사권 존부가 불명확하다는 점과 구속기간을 잘못 계산한 불법 구속이라는 점이다.

만약 공수처의 수사권 없음이 확정된다면, 그간의 수사기록이 모두 무효화될 가능성이 있고, 이에 기반하고 있는 헌법재판소의 심리 및 증거채택 또한 부당할 가능성이 크다. 이 상태로 선고를 하게 되면 법적인 용어로 심리미진의 상태에서 결론을 낸 것이 된다. 이는 일반재판의 경우 상소할 수 있는 주요 불복 사유가 되지만, 헌법 재판은 단심제이기 때문에 그대로 확정된다. 만약 심리미진의 해소 없이 대통령의 파면이 인용될 경우 지지자들은 광장에서의 불복으로 나라는 다시 혼란에 빠질 것이다.

‘어느 자(者)가 되든 그게 그 자(者)이다’라는 시중의 말처럼 대통령의 파면 여부보다 더 앞서는 가치는 국민의 통합과 안정, 법치의 최후 보루인 사법부에 대한 신뢰이다. 이를 위한 유일한 길은 적법 절차에 의한 심리, 실체적 진실 발견을 위한 진지한 노력, 결론에 합당한 상식적인 법리의 적용 등으로 종결된 한치의 흠결 없는 재판뿐이다. 재판의 본질에 벗어나 잿밥에 염두를 둔 듯한 초시계를 동원하는 꼼수로는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 필요하다면 열 번이라도 변론을 재개해 심리에 미진함이 없는 결론만이 국민도 살고 사법부도 사는 길이다.

기(氣) 철학에 ‘물극필반 명일환류(物極必反 命日環流)’라는 말이 있다. 무슨 일이든 모순이 극에 달하면 변화해야 기가 제대로 순환한다는 뜻이다. 사상 유례없는 대통령 탄핵을 두 번씩이나 겪고도 변화가 없다면 이 나라는 미래가 없다. 변화의 지점은 이번 태풍에 모두 수면 위로 떠 올랐다. 승복과 관용이 없는 정치 세력 간의 적대적 공생관계, 단임 대통령제와 국회의원 소선구제가 결합한 승자독식 구조, 사법부에 이념화 된 사조직 존재 의혹, 가족회사라고 자인하고 있는 선거관리위원회의 불투명성, 명태균으로 대변되는 부패한 공천제도, 검수완박으로 엉망된 국가 수사권, 언론의 도를 넘는 정치편향, 중이 제 머리 못 깎는 국회의원 특권 폐지 등등의 문제를 전 국민이 주시하게 되었다. 이번 정변이 어떠한 결론이 나든 정치인들이 혁명에 버금가는 변화 없이 얼렁뚱땅 덮어두고, 다음 권력을 향해 좀비처럼 달려간다면 엄동설한의 거리로 내몰렸던 국민의 분노가 어떤 형태의 저항으로 나타날지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코로나 시절부터 시작된 불경기는 거의 바닥을 치고 있다. 치자(治者)들의 권력 다툼에 서민들은 생활고의 신음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속수무책인 국민은 울며 겨자 먹기의 기도로 타들어 가는 마음을 달래고 있다. “어떻게 여기까지 온 사람들입니까. 험난한 기아의 고개에서도 부모님의 손을 뿌리친 적이 없고, 위험한 전란의 들판이라도 등에 업은 자식을 내려놓지 않았습니다. 비상(非常)에는 비상(飛翔)해야 합니다. 싸움밖에 모르는 정치인에게는 비둘기의 날개를 주시고, 살기 팍팍한 서민들에게는 독수리의 날개를 주십시오. 이 사회가 갈등으로 더 이상 찢기기 전에 기러기처럼 나는 법을 가르쳐 주소서. 소리를 내어 격려하고 선두의 자리를 바꾸어 가며 대열을 이끌어 가는 저 따스한 기러기처럼 우리 모두를 날게 하소서. 그래서 이 나라를 사랑하게 하소서. ” (이어령의 ‘나라를 위한 기도’ 중에)

신면주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