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밑도 끝도 없는 벽화 그리기

2025-03-12     경상일보

“저 벽에도 그리고 싶어요.” 3학년 우리 반 아이들이 벽화 그리기 첫 수업을 하고 교실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벽화 그리기에 머뭇머뭇하며 자신 없어 하던 아이들이 순식간에 용기와 자신감으로 충만했다. 더러워진 복도 벽을 보면서 그림으로 아름답게 꾸미면 좋겠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해마다 미술 교과서엔 우리 학교 공간 꾸미기가 나온다. 학교 시설물에 뭘 손댄다는 건 여러 가지 절차가 필요해 보인다. 어디다 무엇을 어떻게 꾸밀 것인지 학교 공간을 손대기에는 엄두가 나질 않아, 늘 교실 한쪽을 꾸미는 것에 만족해 왔었다.

하지만, 이번엔 잊을 수 없는 경험을 우리 반 아이들과 하게 되었다. 1년 전에 들은 시청각실 벽에 그림 그릴 공간이 있다는 교장선생님의 말씀이 기억났다. 나는 벽화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다. ‘벽화를 어떻게 그리지?’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두려움으로 무엇을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몰랐다.

그러고 1년이 지나갈 무렵이었다. 아이들의 그림에는 어른들이 흉내낼 수 없는 해맑음과 순수한 상상이 담겨 있는 것에 착안해, 우리 반 아이들과 함께라면 뭐라도 그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벽화 그리기 재료와 방법에 대해 알아보고, 학교 현장의 사례들을 찾아보았다. 관심 있는 선생님과 직원분들을 모으고, 벽화 그리기를 함께할 학생들도 모집했다.

어떤 주제로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 본격적으로 의논이 시작되자, 선생님들의 다양한 의견을 들을 수 있었다. 우리 학교 특색 교육인 생태환경 교육을 주제로 태화강변 배경을 선생님들과 교직원분들이 그리고, 그 위에 아이들이 미래의 생태환경 생활 모습을 얹고, 마지막으로 학생자치회에서 정한 학교 마스코트를 그려 ‘숨은그림찾기’로 진행하자고 하였다. 벽화 그리기는 점점 더 흥미진진해지고, 3·1절 운동처럼 전교생들에게 입소문으로 퍼지기 시작하였다.

하루는 주무관이, 하루는 교사가, 하루는 학생이, 하루는 학생자치회에서 다녀간 시간이 한 달 정도 모이자, 드디어 밑도 끝도 없는 ‘학생과 전 교직원 동행 벽화 그리기’ 그림이 완성됐다. 학생, 교직원할 것 없이 무아지경에 빠져 그린 벽화는 청솔인에게 생명력 있는 자산이 되었다. 무심코 벌인 벽화 그리기에 청솔인들의 열정이 장작불처럼 타올랐다.

나는 이 광경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교장선생님께 벽화 완공 기념식을 제안드렸다. “해야 한다면, 해야죠.” 교장선생님의 이 말씀에 그동안 청솔인들의 노고에 깊은 응원과 박수를 보내오시는 것 같았다. 기념식 파티는 어떻게 알고, 벽화 그리기에 참여한 학생들도 찾아와 소감을 발표했다. ‘누군가의 한 생각이 실천되지 않았더라면, 우리에겐 변화와 도전은 없는 시간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아찔한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내가 청솔초등학교 교직원이라 참 행복하고, 자랑스러운 날이었다.

안현정 청솔초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