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분옥 시조시인의 시조 美學과 절제](59)봄비 갠 아침에-김수장(1690∼?)
어김없이 봄은 오고 꽃은 핀다
봄비 갠 아침에 잠 깨어 일어보니
반만 피던 꽃봉오리 다투어 피는고야
새들도 춘흥(春興)을 못 이겨 노래 춤을 하느냐
-<병와가곡집>
봄비 내리는 소리는 비비새 울음소리 같다. 음악 소리도 이처럼 맑게 들리지는 않을 것이다. 잠에서 깨어 한참이나 바깥 정원에 내리는 빗소리에 귀를 기울여 듣고 있으면 새봄의 발자국 소리가 봄비와 함께 온다.
또닥또닥 마른 풀을 적시고 있다. 그 소리에 메마르고 거칠었던 심사가 촉촉이 젖어 실타래에서 실이 풀려나듯 끝없이 풀려나 무엇이든 향기롭고 풀도 꽃인 양 귀하다.
겨울을 나려고 북쪽에서 날아온 기러기도 다시 날아갈 채비에 분주하고 농촌의 뉘 집 며느리도 농부도 한참 농사 채비에 분주할 것이다.
도시에 사는 사람도 솜이불이 갑자기 무겁게 느껴져서 이부자리 손질부터 봄옷을 찾아 걸어 놓고 봄맞이 채비에 한참을 보낸다.
별 가진 것 없는 내게도 차별 없이 분간하지 않고 봄비가 내린다.
뉘 집 할 것 없이 골고루 봄비는 내린다. 풀씨든 꽃씨든 누구네 마당이든 논밭이든 싹을 틔운다. 누구에게나 봄은 오고 그 아무에게나 따스한 봄바람은 분다.
연인으로부터 이별 통보를 받은 이나, 사업을 말아 먹은 이나, 부모 자식 간에 아픈 이별을 나눈 이나 우리 모두에게 봄은 오고 봄비는 촉촉이 골고루 내린다.
김수장은 조선시대 문인이며 중인이었다. 인기 높은 가객으로서 김천택과 함께 ‘경정산 가단’을 결성해 시조 보급에 힘썼고 <해동가요>를 편찬했다.
많은 날들이 마음 같지 않고, 되는 일만 있는 것도 아닌 것이 인생이다. 누구나 제 몫의 인생을 자신이 살아야 하는 것이다. 어김없이 봄은 오고 꽃은 피고 새들은 지저귄다. 풀과 꽃과 곡식만이 싹 틔울 일이 아니라 우리도 이 봄엔 싹 틔워야 할 일은 있다. 꽃처럼 풀처럼 꽃 피워야 할 자신만의 몫을 찾아내야만 한다.
‘반만 핀 꽃봉오리 다투어 피는’아침이다. 한분옥 시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