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울산 문화예술의 지속가능한 생태계를 기대하며
생명이 깨어나는 3월, 울산의 문화예술은 새로운 도약을 시작했다. 울산의 랜드마크가 될 콘서트홀은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디자인을 중시하는 국제지명공모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울산시립교향악단의 새 예술감독인 세계적 지휘자 ‘사샤 괴첼’의 취임연주회 ‘꿈과 환상’이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2023년부터 추진 중인 법정 문화 도시사업은 울산의 문화예술이 풍성하게 자랄 수 있는 비옥한 토양을 제공하고 있다. 오랜 세월 울산을 채워온 산업의 물결 사이로 이제 새로운 문화예술의 숨결이 뚜렷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외형적 성장과는 달리, 울산의 문화예술 생태계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지역 대학의 문화예술 관련학과들은 지원자 감소와 성과 중심의 대학 구조조정으로 존폐의 갈림길에 서 있으며, 미래 울산의 문화예술을 이끌어갈 인재들이 더 나은 기회를 찾아 도시를 떠나고 있다.
수년 후 세계적 수준의 콘서트홀이 완공되었을 때, 과연 그 웅장한 공간을 채울 수준 높은 문화예술 콘텐츠를 어떻게 준비할 수 있을 것인가?
건축물은 생명이 없는 구조물에 불과하다. 그 공간에 숨결을 불어 넣는 것은 그것을 채우는 사람들이다. 콘서트홀이 완공되었을 때, 그곳을 채울 지역 연주자들과 전문가들이 턱없이 부족하다면 우리는 외부에서 문화예술 분야 인재를 영입하거나 문화예술 콘텐츠를 유치해야 한다.
그러나 이는 일시적 해결책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진정한 문화예술 도시는 외부에서 수입된 콘텐츠가 아니라, 도시 내부에서 끊임없이 생성되고 순환하는 문화예술 생태계가 존재할 때 가능하기 때문이다.
울산이 직면한 문화예술적 과제는 단순히 하드웨어의 부재가 아니라 문화예술을 창조하고 소비하는 문화예술 생태계의 빈약함에 있다. 대규모 공연장이나 전시관은 문화예술의 결과물을 담는 그릇일 뿐, 그 자체로 문화예술을 생산해 내지는 못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문화예술가들이 창작 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자유로운 환경이다. 또한, 젊은이들이 문화예술을 직업으로 선택할 수 있는 비전과 시민들이 일상에서 문화예술을 누릴 수 있는 접근성과 개방성이다.
지금부터 체계적이고 세밀하게 준비해야 할 것은 울산의 문화예술을 이끌어 갈 창의적 인재들을 키워내는 교육 시스템이다. 울산의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음악, 미술, 문학을 접하고 꿈을 키울 수 있는 환경과 초등학교에서부터 대학까지 이어지는 전문적인 문화예술 교육의 튼튼한 연결고리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초중고 교육과정에서 예술 교육을 강화하고, 사라져가는 지역 대학의 문화예술 관련 학과를 지원하며, 지역 예술가들이 활동할 수 있는 소규모 문화예술공간을 늘려나가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또한 예술가들이 창작에 몰두할 수 있는 지원 프로그램과 시민들이 부담 없이 문화예술을 접할 수 있는 공간들이 확대 되어야 한다.
세계적인 문화예술 도시들을 살펴보면 그들은 모두 탄탄한 문화예술 교육지원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모차르트의 고향인 잘츠부르크의 음악 교육, 세계 문화예술 중심지인 런던의 예술학교, 실험적 예술가의 메카인 베를린의 창작 지원 프로그램 등이 그 도시들의 문화예술적 토대를 형성했다. 이러한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과 적극적인 지원 정책이 없다면, 아무리 아름다운 콘서트홀이 있어도 겉으로만 빛나는 건축물이 될 위험이 있다.
콘서트홀은 문화예술 도시의 상징이 될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문화예술 도시를 만들지는 못한다. 진정한 문화예술 도시는 시민들의 일상에 문화예술이 자연스럽게 스며들 때 완성된다. 울산의 아이들이 악기와 붓을 친숙하게 여기고, 산업도시의 젊은이들이 문학과 예술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문화예술 도시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도시의 영혼을 살리는 일은 사람을 키우는 일에서 시작된다. 따라서 울산의 문화예술 르네상스는 개성 있고 능력 있는 문화예술가들을 지속적인 환경에서 육성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문화예술은 단기간적인 성과를 필요로 하는 프로젝트가 아니라, 세대를 걸쳐 서서히 열매를 맺는 과정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문화예술이 없다면 경제적 효율만 남고, 창의적 혁신의 가능성은 사라진다. 울산 문화예술의 ‘꿈과 환상’이 이루어지는 지속 가능한 생태계가 조성될 것을 기대한다.
이규백 울산대학교 교수 울산공간디자인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