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80주년 릴레이 기고(2)]울산에서 울려퍼진 그 날의 만세 함성
추웠던 겨울이 지나가고 어느덧 우리의 옆에 파릇파릇한 새싹들이 자라나는 계절이 왔다. 이토록 설렘이 피어나고 희망이 가득한 봄이지만, 106년 전 울산의 봄은 그 어떤 봄보다 뜨겁고 치열했다. 일제의 무단통치 속에서 억압받고 속으로 울화를 삼켜야 했던 우리 민족이 일제의 식민지배에 항거하여 태극기를 들고 우리나라의 독립을 외쳤기 때문이다. 1919년 3월, 서울에서 시작되었던 대한독립 만세운동은 신분과 성별, 종교 등과 상관없이 우리나라의 독립을 염원하였던 모든 백성들이 참여했다.
그 열기가 곧 울산 지역까지 도달하여 울산에서도 1919년 4월, 언양, 병영, 남창 지역에서 대한독립을 외치는 뜨거운 함성이 울려퍼졌다.
울산 지역에서 일어났던 만세운동은 4월2일 언양을 시작으로 4월4일과 5일은 병영, 4월8일 남창까지 이어졌다. 먼저 언양에서는 장날인 1919년 4월2일 아침, 천도교 교인들이 전날 미리 준비한 태극기를 배부하며 상남·하북·두서·언양 등 각지에서 모인 장꾼들에게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며 만세운동을 시작했고, 그 모습을 본 주변 사람들까지 합세하여 많은 수의 인원이 함께 힘차게 태극기를 흔들며 행진했다.
다음으로 병영에서는 1919년 4월4일, 병영청년회 간부들의 거사를 미리 준비하였고 일신학교(현 병영초등학교)의 운동장에서 학생과 군중을 모아 축구대회 중 축구공을 높이 차서 올린 것을 신호로 하여, 태극기를 들고 거리로 나와 대규모의 시가행진을 벌였다. 독립을 향한 굳은 의지를 앞세워 병영주재소 앞까지 행진하였으나, 곧 이은 일제의 진압으로 인하여 만세운동에 참여한 인원들을 체포하고 강제로 군중들을 해산시켰다.
하지만 바로 다음날에 체포를 면했던 병영청년회 간부들을 필두로 주민들과 학생들이 합류하여 2차 만세운동을 펼쳤다.
마지막으로 남창에서 이어진 만세운동은 기미년 고종황제의 인산에 참여했던 분을 통하여 서울에서 일어났던 3·1독립만세운동 소식에 대하여 알게 된 남창의 우국지사들이 남창의 장날을 거사일로 정하고 거사 준비를 시작했다.
이튿날인 1919년 4월8일, 남창 장날에 모인 장꾼들과 민중들과 함께 힘을 합쳐 태극기를 들고 큰 소리로 만세운동을 펼쳤다.
106년 전 전국에 널리 울려퍼졌던 조국의 독립을 위한 이들의 뜨거운 함성은 이처럼 울산지역에서도 이어졌으며, 중심세력과 주도 계층은 모두 달랐어도 항상 민중을 중심으로 뭉쳐 일본 헌병들의 탄압에 맞서 만세운동을 전개했다. 그 과정에서 많은분들이 아픔을 겪고 희생하셨으며, 우리는 그 분들의 공헌과 이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울산지역에서는 매년 4월 마다 만세운동에 참여했던 선열들의 희생과 애국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언양, 병영, 남창 세 곳에서 대한독립 만세 재현행사가 개최되고 있다.
만세운동 재현행사는 지역민들과 자라나는 미래 세대에게 그 날의 의미를 되새기고 우리 지역의 독립운동의 역사 교육을 하는 것을 목적으로 추진되고 있으며, 실제 만세운동이 일어났던 날에 맞춰 재현행사를 개최하는 것이 특징이다.
올해는 광복 80주년이 되는 해로 국가보훈부에서는 분야별 독립운동과 선열들의 희생과 헌신이 후손들에게 올바르게 계승될 수 있도록 여러 분야의 기념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다. 울산보훈지청에서도 이에 걸맞도록 우리 지역의 독립운동 역사와 숭고한 가치를 지역민들에게 알리고, 선열들에 대한 예우와 감사의 마음을 지닐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 조성에 앞장서도록 노력하여 106년 전 울산의 뜨거웠던 봄을 많은 분들께 더 널리 알릴 수 있기를 희망한다.
김근덕 울산보훈지청 보훈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