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학생이 주도하는 배움의 시대, 고교학점제
“수학을 어려워하는 학생이 미적분 대신 음악 이론을 탐구하고, 컴퓨터에 관심 있는 학생이 프로그래밍 수업에서 자신만의 앱을 개발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자.” 이는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2025년 전면 도입된 ‘고교학점제’가 대한민국의 고등학교 교육현장에서 실현하고 있는 혁신적 변화이다.
고교학점제는 학생들이 기초적인 소양과 기본 학력을 바탕으로 자신의 진로와 적성에 맞는 다양한 과목을 스스로 선택하고, 이수한 과목의 학점을 누적해 졸업을 인정받는 제도다. 지금까지의 획일적인 교육 방식에서 벗어나 학생 개개인의 다양한 관심과 잠재력을 존중하며 맞춤형 교육으로 나아가는 중대한 전환점이다.
고교학점제의 핵심적인 특징을 살펴보면 첫째, 학생들은 진로와 적성에 맞춰 자신만의 학습 로드맵을 설계할 수 있다. 문학에 관심 있는 학생은 문학창작을, 기술에 흥미가 있는 학생은 로봇공학이나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밍 과목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둘째, 이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 학교는 학생들의 과목 선택권을 최대한 보장하면서 교육과정을 다양하게 개설하고 있다. 심지어 학교 간 협력으로 공동교육과정을 운영하거나, 온라인 수업 등을 통해 선택의 폭을 확장한다. 셋째, 성취평가제와 과정중심 평가를 도입하여, 학생들이 시험 결과뿐만 아니라 학습 과정 자체에서도 의미 있는 성취감을 느낄 수 있도록 돕는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학습의 즐거움을 느끼고, 보다 깊이 있는 이해와 능력을 키우게 된다.
이와 같은 변화를 실질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울산광역시교육청에서는 ‘울산고교학점제지원센터’를 설립하여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학교에서 단독 개설이 어려운 소규모나 심화 과목은 학교 간 협력을 통한 ‘배나무 공동교육과정’으로 해결하며, 학생들의 과목 선택의 폭을 확장하고 있다. 또한 ‘학업설계 클리닉’을 통해 학생들이 전문적 상담과 지도를 받아 자신에게 맞는 최적의 학업 경로를 찾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학생과 학부모가 쉽게 수강신청과 상담 예약 등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이런 기대 속에서도 현실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들도 존재한다. 먼저, 다양한 과목 개설을 위한 교사 확보 및 역량 강화가 시급하다. 특히 소규모 학교나 농어촌 지역에서는 선택 과목을 개설하기 위한 인적, 물적 자원이 부족한 상황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와 지자체 차원의 지원과 투자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둘째, 대학 입시와의 연계성이다. 고교학점제의 목표가 학생 개개인의 역량 강화와 진로 탐색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대학 진학을 우선순위에 두고 있다. 대학 입시가 고교학점제와 조화를 이루며 공정성과 다양성을 확보하도록 평가 방식의 변화와 함께 입시제도의 개편도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셋째,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과목을 선택하고 관리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학습 결손에 대한 지원 체계 마련이 필요하다. 선택과 책임은 함께 가야 하며, 학생들이 자신의 선택에 책임감을 가질 수 있도록 학습 지원 및 상담 체계 구축이 필수적이다. 학생들의 과목 선택권을 보장하면서도 교육의 질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울산고교학점제지원센터와 같은 지역별 지원 체계의 구축은 이러한 과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변화가 성공적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학생, 교사, 학부모, 지역사회, 정부가 함께 공감하고 협력하는 환경 조성이 필수적이다. 특히 지속적인 소통과 공감대 형성을 위한 홍보와 교육이 꾸준히 이루어져야 하며, 이를 위한 연수와 워크숍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적극적으로 제공되어야 한다.
고교학점제는 학생들에게 진정한 의미의 교육적 자유와 책임을 경험하게 하고, 궁극적으로는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창의적이고 자율적인 인재를 육성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이제 고교학점제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통해 대한민국 교육은 학생들의 꿈을 실현하는 길을 열어가고 있다. 우리 사회 전체가 함께 고민하고 지원하여, 더 많은 학생들이 스스로 설계한 배움의 길 위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할 때이다.
이미화 동의대 메타버스교육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