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혜숙의 한국100탑(20)]청양 서정리 구층석탑
충남 청양군 정산면 서정리에 들어서면 넓은 논 가운데 잘 생긴 석탑이 눈에 확 들어온다. 산 위의 우뚝한 탑을 보려면 가쁜 숨을 몰아쉬며 한참을 올라야 한다. 깊은 골짜기에 숨어 있어서 없는 길도 만들어 가야 제 모습을 드러내는 옛 탑도 있다. 동네 한 가운데 있지만 골목길을 이리저리 더듬어야 만날 수 있는 탑도 많다. 그러나 서정리 탑은 ‘나 여기 있소’하고 불쑥 다가오기에 얼른 손을 내밀 수밖에 없다.
고려 초기에 건립된 보물 제18호 서정리 구층석탑은 그 옛날, 청양 문화의 중심지였다. 불교를 숭상하던 고려 시대의 가장 큰 명절은 연등회와 팔관회였다. 이런 축제가 열리면 사람들은 다투어 모여들어 탑돌이를 하며 부처의 덕을 찬양했을 것이다. 정산면 사람들은 지금도 새해가 되면 높이 6m의 우뚝한 석탑 앞에서 제를 올리고 마음을 모아 마을의 안녕과 평안을 기원한다.
고려시대에는 삼층이 아닌 다층탑이 많이 축조되었다. 하지만 구층탑은 매우 귀하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오대산 월정사의 화려한 팔각 구층석탑이 대표적이다. 이런 다층석탑을 세운 것은 대부분 백제의 옛 땅에 살던 고려인들의 몫이었다.
서정리 석탑은 일층 몸돌은 크고 높지만 이층부터는 급격하게 줄어들어 체감이 적절하다. 지붕돌마저 체감률이 알맞아 번잡스럽지 않고 우아하다. 하층기단에는 탱주가 없는 대신 네 면에 각 2구씩의 안상무늬를 길게 새겨 넣었다. 안상의 가운데에는 꽃문양이 봉긋하다. 이런 기다란 안상의 생김새는 근처의 남천리 석탑과 계봉사 오층석탑에도 나타나고 있어 이 지역만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서정리 구층석탑 앞에는 정산면이 자랑하는 백련지가 있다. 초여름, 백련이 만개하면 구층석탑은 연화좌 위에 둥둥 떠 있는 극락세계가 된다. 여름을 기다리지 못하고 잎이 꽃보다 아름다운 잎새달에 석탑 앞에 섰다. 탑을 둘러싼 연산홍이 타는 듯이 붉다. 빨간 단청을 입힌 극락전이다. 배혜숙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