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문인화 산책]사시사철 푸르른 난초·괴석...군자의 삶, 은유적으로 표현

2025-04-08     차형석 기자

본보는 지난해 3월부터 11월까지 9개월간 연재해 독자들의 호응을 얻었던 ‘월요일에 만나는 문인화 산책’을 올해도 ‘新 문인화 산책’이라는 이름으로 매월 한 차례 씩 연재합니다. 이재영 문인화가의 작품에 미술평론가인 김찬호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수가 옛 시와 시조를 통해 작품에 의미를 더할 예정입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향(香)은 유형의 세계를 초월한다. 담담하고 그윽한 향이 봄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시는 뜻을 말하고, 화가는 마음을 묘사한다. 예술가는 작품으로 감상자에게 여운이 있는 향기를 전해야 한다. 화분에 자란 난초가 고개를 숙이고 은은한 향이 퍼져가고 있다.

김정희(金正喜, 1786~1856)는 ‘제석파난권題石坡蘭卷’에서 “난을 치는 것이 가장 어렵다(寫蘭最難)”라고 했다. 또한 그는 ‘불이선란도’에서 “난초를 그리지 않은 지 이십년 만에 우연히 난초를 그렸는데 본성의 참모습이 드러났네. 문을 닫고 찾는 곳이 유마거사의 불이선이네” 김정희는 20년 만에 왜 다시 난초를 그렸을까? “초서와 예서의 기이한 법으로 그렸으니 세상 사람들이 어찌 알고 어찌 좋아하겠는가.”라고 한데서 알 수 있다. 김정희는 끊임없는 모방을 통해 서예의 격을 높일 수 있었고, 자신만의 서법으로 20년 만에 다시 난초를 그리고 있다. 이를 통해 서격과 화격이 함께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매란국죽 사군자는 오랜 기간 매우 폭넓게 동아시아인들의 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다. 사군자는 각 식물에 군자라는 최고의 수식어를 붙임으로써 강한 가치지향적인 코드를 담아내고 있다. 특히 난초는 깊은 산중에서 은은한 향기를 멀리까지 퍼뜨리는 식물로 회남자(淮南子, ?~B.C.123)는 ‘설산훈편’에서 “난은 그윽한 골짜기에서 뿌리를 내려 찾는 이가 없다고 하여 그 향기를 멎지 않는다. 군자는 의로움을 행함에 있어 알아주는 이가 없다고 하여 그만두지 않는다”라고 했다.

난은 화려하지도 않고 그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지만 단아한 자태를 지닌 식물이다. 강인한 외형이나 화사한 외형을 갖추고 있지 않기에 가까이하기 전에는 연약한 초본식물이라고 느낄 수도 있지만 문화적 속성을 알게 되면 난이 지닌 고아한 기품과 이미지에 어느덧 매료되게 된다.

난초의 외형은 그 끝이 가늘고 중간은 두껍고,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며 휘어지는 것이 특징이다. 그림 속 화병에서 자라는 난엽은 위로 뻗어 가고 있다. 햇빛을 막는 발鉢이 화면에서 공간감을 만들어주고 있으며, 괴석의 사실적 표현과 난초의 사의적 표현이 대비를 이루고 있다. 화제에는 “삶 속에 스며드는 고귀한 향기여”라고 썼다.

조희룡(趙熙龍, 1789~1866)은 난초 그림의 화제에 “무릇 난초를 그리고 돌을 그리는 것은 그것으로 하여 천하의 수고로운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함”이라 했다. 이같이 난초는 사시사철 푸르름을 통해 군자적 삶을 은유적으로 표현했고, 괴석은 변하지 않는 영원성으로 군자적 삶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괴석은 괴이하게 생긴 돌이다. 전통적으로 괴석은 세월이 가도 변하지 않는 속성을 지녔고, 추할수록 아름답다고 하는 추(醜)의 미학을 반영한다. 또한 괴석의 찢기고 파이고 뚫어진 세월의 흔적은 어떤 시련에도 결코 굴하지 않는 군자적 사유를 담고 있다. 이 그림 속 괴석은 작가의 고향인 경주 근처 고향 봉계에서 나온 돌이다. 그래서 이 돌을 ‘봉계혹돌’이라고 한다. 봉계혹돌을 보면 마치 거북을 연상케 한다. 그것은 바로 불사지사(不似之似)의 미학적 경계를 보여준다. 거북과 괴석의 코드는 ‘영원성’을 상징한다. 아래 낙관도 회화적 공간으로 작품의 하모니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림은 정신의 조형적 표현이다. 모든 사물에는 상징이 있다. 사물의 생태를 관찰하고 응축시켜 작품이 만들어진다. 특히 붓으로 그리고 마음으로 완성하는 문인화는 문자, 조형, 개념의 요소가 작가에 의해 축적되고 압축되어 다듬지 않는 자연스러움, 우연과 필연이 부딪쳐 탄생한다.

글=김찬호 미술평론가·그림=이재영 문인화가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