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너의 뒤에서
2000년대 초반에 드라마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회차가 끝나고 나오던 NG 장면. 위엄 있는 왕이 대사를 버벅대며 “죄송합니다”를 외치고, 이별하던 연인이 까악까악 울리는 까마귀 소리에 웃음 터지기까지. 세상 진지하고 완벽해 보이던 주인공이 인간적이라고 느껴져서 그 시간이 좋았다. 무엇보다 시청자는 모르는 미공개 장면이 숨어있다는 사실에 호기심을 느꼈던 것 같다.
이제는 더 이상 드라마가 끝나길 기다리지 않는다. 수업 시간은 물론이고 쉬는 시간과 학교 행사 곳곳에서 어릴 때는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수업 시간에 낙서하다가 들켰을 때 말없이 한참을 보시던 선생님, 어쩌면 순간적으로 잊어버린 이름을 떠올리고 계셨을 수도. 학예회때 펼쳐진 화려한 풍선과 그날따라 멋지게 차려입은 선생님, 보호자와의 만남에 전날 밤부터 긴장했을지도 모른다. 쉬는 시간에 옆 반 선생님과 하하 호호 웃다가 반에 들어오면 다시 엄해지던 선생님, 사실은 열심히 사회생활 중이었으리라.
이처럼 직접 겪어봐야 아는 것들이 있다. 시청자에서 촬영팀으로 역할이 바뀐 느낌이랄까. 학교 행사를 맞아 강당에 앉아 있기만 할 땐, 단상 위로 올라가는 동선(왼쪽인지, 오른쪽인지)이나 무대의 조명(하나만 켤지, 두 개를 켤지)까지 신경 쓰는 누군가가 있다는 걸 몰랐다. 늘상 삐딱하게 앉던 어린이가 바른 자세를 외치고, 빨간 날만 기억하던 청소년이 매년 장애인의 날(4/20), 과학의 날(4/21), 지구의 날(4/22)을 챙기게 될 줄이야.
한때는 보호자 상담 중 “아이를 안 낳아보셔서 모르시죠”라는 말을 들으면 당황스러웠다. 이제는 부모의 삶이 얼마나 크고 무거운지 짐작은 가기에, 경험하지 않아 모르는 게 있겠다며 이해하곤 한다. 그래도 겪어봐서 아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 구분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누구나 모르는 게 있다. 교사라서 모르고 부모이기에 모르고, 아이라서 알 수 없는 것들. 아는 것을 내세우는 게 모르는 걸 인정하는 것보다 통하는 세상이다. 부끄럽지만 아이들에게 “선생님도 모르겠어”를 말하지 못해 한 손으로 빠르게 검색창을 휘저으며 아는 척 한 적도 있다. 수학 문제에 별표만 치고 넘어가면 영영 풀 수 없듯, 무수히 많은 별의 존재를 인정하고 다시 풀어야 동그라미로 채워가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최근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가 무쇠 같은 인기를 얻고 있다. 누구나 겪지만 누구도 같지 않은 이야기를 통해 특별하지 않은 삶은 없다는 걸 보여준다. 한 발짝 뒤에서 보는 아이들도 모두가 주연처럼 빛이 난다. 그 시절엔 몰랐지만 참 많은 이들이 아이들을 향해 조명을 비추고 있었다. 추억 속에 길이 남을 한 컷을 위해 가정에서, 학교에서, 교육청에서, 각종 기관에서는 기꺼이 조연이 된다. 빛을 받은 그림자가 저마다의 방향으로 뻗어나가길 기다리며 오늘도 우리는 미공개 장면을 남긴다.
배상아 복산초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