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광물속의 작은 전쟁: 희토류를 둘러싼 이권 다툼

2025-04-15     경상일보

요즘 우리가 당연하게 사용하는 것들, 예를 들어 스마트폰에서부터 컴퓨터, 전기자동차, 풍력발전기, 드론, 심지어 초정밀 미사일의 군사무기까지. 이 모든 것에 꼭 필요한 재료가 있다. 그것은 바로 ‘희토류(Rare Earth Elements)’라는 금속들이다. 이름만 들으면 “정말 희귀한 건가?” 싶겠지만, 사실 지구상에 그리 드문 원소는 아니다. 문제는 이 자원이 몇몇 나라에 몰려 있고, 캐내고 가공하는 과정이 매우 복잡하다는 데 있다. 그래서 ‘전략 자원’이라는 이름이 붙는다.

희토류는 총 17종으로, 대부분 우리가 학교에서 배웠던 주기율표 속 란타넘족에 속한다. 이들 중에는 네오디뮴(Nd), 프라세오디뮴(Pr), 디스프로슘(Dy), 유로퓸(Eu), 이트륨(Y) 같은 생소한 이름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이들의 이름은 낯설어도 우리 일상에서 빠질 수 없는 존재다. 네오디뮴은 자석을 만드는 데 쓰이고, 이는 전기자동차 모터와 풍력 발전기의 핵심 부품이다. 유로퓸과 터븀(Tb)은 TV나 스마트폰 화면을 선명하게 해주는 형광체로 LED와 디스플레이의 색을 만들어낸다. 이트륨은 스마트폰, 레이저, 의료기기에도 쓰이고, 세륨(Ce)은 자동차 배기가스를 줄여주는 역할을 한다.

여기까지 보면 그냥 ‘귀한 금속’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복잡하고, 무섭고, 국가별 전략적이고 정치적인 이야기가 숨어 있다. 전 세계 희토류의 60~80%를 중국이 생산하고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채굴은 물론 정제, 가공, 생산까지 모두 중국이 중심이다. 만약 중국이 “우리 이제 희토류 수출 안 해”라고 하면, 미국이나 유럽, 일본의 첨단 산업뿐 만아니라 반도체가 주력인 우리나라도 단숨에 흔들릴 수 있다. 희토류는 군사용 무기에도 들어가기 때문에, 단순한 경제 문제를 넘어 ‘국가 안보’ 차원의 이슈가 된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는 작년 미국의 제 47대 대통령에 취임하자 말자 “그린란드 주민들의 투표를 통해 독립이나 미국 편입을 결정해야 한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하고 있다. 과거 2019년 대통령 재임시절에도 “그린란드를 미국 땅으로 사겠다.”는 제안을 던졌다. 당시에는 많은 사람들이 웃고 넘겼지만, 사실 트럼프의 의도는 단순한 장난이 아니었다. 그린란드는 얼음 아래에 풍부한 희토류를 비롯한 광물 자원이 매장되어 있는 ‘자원의 보고’다. 미국 입장에서 보면, 중국의 희토류 독점 구조를 흔들고, 자국 내 공급망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계산이 깔려 있었다.

또 하나의 사건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다. 얼핏 보면 에너지 문제, 영토 문제처럼 보이지만, 이 역시 자원과 연결되어 있다. 러시아는 천연가스와 석유뿐 아니라 희토류나 그와 유사한 전략 광물의 공급망에도 일정 부분 영향력을 가진 나라다. 특히 우크라이나 동부와 크림반도 인근에는 많은 광물 자원이 매장돼 있다는 분석도 있다. 전쟁 이후 유럽연합은 ‘이제는 자원을 외부에 의존하면 안 된다’며 자체적인 광물 공급망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 모든 상황은 하나로 연결된다. 희토류라는 보이지 않는 금속을 둘러싼 새로운 ‘자원 전쟁’이다. 과거의 전쟁이 땅과 석유를 차지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지금은 전기자동차, 드론, AI 기술, 반도체, 우주 산업 같은 첨단 기술을 뒷받침하는 ‘소재’를 둘러싼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 자원들이 기후 변화 대응과도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전기자동차, 재생에너지, 친환경 기술에 모두 희토류가 들어간다. 즉, 환경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희토류는 꼭 필요하다. 하지만 중국이나 러시아처럼 일부 국가가 이 자원을 무기화하면, 환경 문제 해결도 한 발 물러설 수밖에 없다.

희토류는 이제 단순한 광물이 아니다. 그것은 기술과 경제, 외교와 군사 전략의 교차점에 놓인 ‘21세기의 석유’이자, 세계 권력을 결정짓는 ‘보이지 않는 무기’로 미래 권력의 열쇠다. 스마트폰 하나, 전기자동차 한 대 뒤에는 이런 복잡한 국제 정치가 숨어 있다는 사실. 이제는 우리가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넘어 ‘누가 그것을 지배하고 있는가?’를 물어야 할 때다.

하양 울산과학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