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전교 임원 선거 소견 발표

2025-04-16     경상일보

학교에도 선거철이 있다. 올해는 전교회장 후보 3명과 부회장 후보 8명이 나왔다. 후보 등록을 마치면 복도에 후보들의 공약 벽보가 붙는다. 학생들과 선생님들은 삼삼오오 벽보 앞에 모여 후보들의 사진과 공약 사항을 살펴보기 바빴다.

요즘은 손으로 직접 만든 벽보가 귀하다. 올해는 손수 만든 벽보는 1~2명의 후보뿐이 되질 않았다. 해가 거듭할수록 자신이 직접 만들어 붙이는 후보가 적어지고 있다.

드디어, 선거일이다. 후보자들이 모두 방송실에 모였다. 손에는 깨알같이 자신들의 공약을 빼곡히 적은 종이를 들고 있었다. 소품도 만만치 않았다. 복면을 든 아이, 동물 의상을 입은 아이, 자신의 기호를 쓴 피켓 등 다양했다.

3학년 땐 수줍음이 많아 교실에서 목소리를 한 번 들어보기 힘들었던 어린이도 소견 발표를 기다리고 있었다. ‘2년이라는 시간이 무섭구나!’ 싶었다. 그동안 어떤 경험을 하고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을까 생각하니, 역시 아이들의 잠재력은 단정 지을 수 없는 일이었다.

올해, 특이한 공약사항은 그림대회와 복면가왕이었다. 해마다 많이 언급되는 공약은 역시 급식 메뉴와 스포츠 반 대항, 운동장에 피구 공통 두기 등이었다. 아이들의 공약을 듣고 있으면 아이디어가 무궁무진하다.

어떤 어린이는 좋지 않은 사항을 그대로 언급하기보다는 아주 긍정적인 해프닝으로 멘트를 하면서 위기를 모면하는 웅변술도 발휘했다. 언젠가 스피치 수업받을 때 아나운서가 말했던 내용이 기억났다.

‘비 오는 날 힘들게 여기까지 오셨죠?’ ‘차가 막혀서 오시는 데 힘드셨죠?’가 아닌 ‘궂은 날 이렇게 안전하게 만나 뵐 수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 ‘먼 길이지만, 오늘 만남을 위해 설레며 기다렸습니다.’처럼 똑같은 말이라도 부정으로 끝나거나 말로 더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긍정의 의미로 첫 멘트를 시작하는 것이 소통의 장에서 좋은 에너지를 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벌써 이런 의미를 초등학생이 알고 있었던 건지 우연한 본능의 반응이었는지 궁금했다. 소견 발표가 끝난 후 나의 느낀 점을 그 어린이에게 전달했다. 첫마디가 “감사합니다”였다. 부끄러움이나 지나친 겸손함이 아닌 자신의 발표에 대한 찬사를 당당하게 받아들여 감사하다는 인사를 했다. 항상 미소로 부끄러워하는 아이들에게 익숙한 탓일까 감사하다는 화답이 인상적이었다.

사실 나부터 칭찬에 익숙하기보다 ‘아이고, 아닙니다.’ 부정의 단어로 수줍어하기 일쑨데, 흔쾌히 자신의 찬사를 받아들이며 감사함을 표현하는 어린아이가 참 대견했다.

안현정 청솔초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