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나눔천사기금, 위기를 희망으로 바꾸는 안전망
2025-04-18 정혜윤 기자
인재든 천재든 완벽한 예방법이란 없다. 줄일 수는 있어도 결코 사라지진 않기에 우리 사회는 예방과 함께 늘 사후 대책을 마련하고 추진해 왔다. 산불이 소강에 접어들자 여러 구호단체와 사회복지 기관에서는 이재민들을 구호하기 위해 모금을 추진하고 국내 기업들은 선뜻 구호 물품을 기부해 주었다. 우리 사회의 일사불란한 일상 회복 기능을 보고 새삼 감탄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현장형 사회복지를 자부하는 울산 남구가 구민들의 다양한 위기 상황에 대비하고자 운영 중인 ‘나눔천사기금’이 잘 작동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나눔천사기금은 남구의 대표적인 민간재원 기금이다. 구민들의 기부금을 재원 삼아 운영하고, 보다 많은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홍보에 힘쓰고 있다. 기부 형태는 개인, 단체, 사업장, 기업 단위로 세분화했는데 △천사 구민(매월 5020원 이상 기부하는 5천사 계좌 가입 주민) △착한 가게(자영업자들이 매월 3만원 기부) △착한 기업(매년 100만원 이상 기부하는 기업) △착한 출발(첫 월급날, 생일 등 특별한 날을 기념해 매월 1만원 이상 기부하는 개인) △착한 모임(각종 모임에서 매월 2만원 이상 기부) 등으로 나눠 관리한다.
이렇게 모인 기금으로 2024년 한 해에만 4655명의 위기 가구를 지원했고, 지원 금액이 2억9700만원이다. 저소득 독거노인을 위한 난방비와 경제적 어려움으로 치료를 포기한 환자들에 대한 의료비, 전세사기 피해 한부모 가정에 대한 주거지원, 저소득 아동의 교육비 지원처럼 사안의 경중을 따지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기금 조성에 있어 어느 하나 쉽게 얻어지는 것은 없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위기 상황이 아닌, 앞으로 있을지도 모를 위기 상황에 대비하고자 단돈 1만원을 선뜻 건네는 사람은 흔하지 않다. 이것만으로도 나눔천사기금은 우리 사회의 기능적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소중한 제도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성과에만 도취해 기금의 근본이 되는 기부 문화가 알아서 잘 정착할 것이란 생각에 빠져서는 안 된다. 지금도 기부 문화 활성화를 위해 민관 차원에서 갖은 노력을 쏟고 있다. 개인이나 기업에 세금 공제 혜택을 주거나, 특별한 기념품을 제공하기도 한다.
기부자의 장기적 동참을 위해 기부자와 기관 사이의 꾸준하고도 생산적인 관계 형성이 필수적이다. 단순히 기부자를 관리하는 수준을 넘어 기부자들과 꾸준히 소통하며 기관에 대한 신뢰를 쌓고 사업에 대한 몰입도를 키워줘야 한다. 기부의 수혜자들이 만족도가 높다고 해서 기부의 목적을 달성한 것은 아니다. 기부자들도 자신들의 기부금으로 달성한 사회적 변화에 성취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기부자의 능동적 참여는 기부의 질을 높이고 중장기적인 안전망을 형성해 다양한 위기 상황에 효과적인 대처가 가능해진다.
우리 남구 역시 정기적 기부자를 위한 특별한 자리를 마련해 소통하는 등 관계 형성에 노력 중이지만, 아직은 수혜자 중심의 성과에 치중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간의 성과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특히 작금의 한국 사회와 같이 소득 격차 심화, 미혼가구 증가, 저출생과 대조되는 고령사회 등 기부의 지속성에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하는 사회적 현상에 대비하려면, 위에서 다룬 내용 외에 앞으로도 다차원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자정작용은 오염된 것이 저 스스로 깨끗해지는 현상을 뜻한다. 그러나 오염된 그것이 결코 스스로 정화되지 않는다. 비와 바람이, 동·식물이 그리고 사람이 노력하지 않으면 그저 오염된 상태로 남아있을 뿐이다. 산불에 그을린 산지가 언젠가는 무성한 산림으로 우거지듯이, 우리 구민들이 맞닥뜨리는 모든 위기의 뒤편에 새로운 새싹을 키울 수 있는 기반이 되는, 그런 준비된 남구가 되어야 함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차문석 울산 남구 복지교육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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