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강]웃는 남자

2025-04-21     경상일보

소설과 영화 등에 나오는 대사나 내레이션 중에 인생사나 세상 이치에 닿는 말에는 눈길이 간다. 그에 담긴 통찰은 개인의 운명은 물론 사회나 국가에도 들어맞는 울림을 주기도 한다. 탄핵 심판이 진행 중이던 지난달 초 ‘웃는 남자’ 뮤지컬을 관람했다. 수년 전에도 여러 차례 공연됐었다. ‘부자들의 낙원은 가난한 자들의 지옥으로 세워진 것이다’라는 뮤지컬 포스터의 타이틀이 강렬하다.

신분 차별이 극심했던 17세기 영국을 배경으로 입이 찢긴 끔찍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순수한 마음을 지닌 주인공 그윈플렌의 여정을 통해 정의와 인간의 존엄이 무너진 세태를 비판하고, 보편적 가치에 대해 조명하는 내용이다. 빅토르 위고의 소설이 원작이다.

몇 년전에 보았던 같은 제목의 영화 첫 장면, 나는 일찍이 이보다 더 뛰어난 소설을 써 보지 못했다는 자막이 기억난다. 소설의 문학적 가치에 대한 작가 자신의 평가가 인상적이었다. 위고는 나폴레옹 3세의 쿠데타에 반대해 영국에 망명해 있는 동안 이 작품을 썼다. 우리는 소설을 읽고 영화나 뮤지컬을 보면서 비극적 운명의 주인공 그윈플렌의 여정에서 보여주는 사회 정의와 도덕, 법, 인간의 존엄성 등에 대해 공감하게 된다.

원작 소설에는 그윈플렌이 공화제를 끝까지 지지하면서 제임스 2세에 반기를 든 클랜찰리경의 아들로서 왕의 권력의 칼에 보복당해 콤프라치코스라는 인신매매단에 팔려 가 얼굴을 찢긴 것으로 되어 있지만, 뮤지컬에서는 이복 형제 데이빗경의 모함으로 팔려 간 것으로 각색됐다. 픽션이지만 권력의 횡포나 모함으로 인간의 존엄을 짓밟는 일은 괴물같은 영혼을 가진 추악한 자들이 저지르는 악행이다.

입이 찢어진 그윈플렌은 혼자 버려져 눈 속을 헤매다가 죽은 여자의 품에 안긴 눈이 먼 여자 아기 데아를 발견하고, 이들은 유랑극단의 단장인 떠돌이 약장수 우르수스에 의해 길러졌다. 그윈플렌은 유랑극단의 일원으로 살아가면서 그의 웃는 얼굴로 사람들을 웃겨 인기를 얻는다. 하지만 그는 웃지 않았다.

그의 얼굴이 웃었지, 그의 생각은 웃지 않았다. 찢긴 입은 하층민의 삶의 절망스러움과 비참함을 상징한다. 나중에 출생의 비밀이 밝혀져 원래의 신분 클랜찰리 공작으로 돌아간다. 귀족으로서 의회에 나가 ‘가진 자들의 고귀한 신분으로 이루어진 의회는 가난한 자들을 위한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호소하지만 조롱당한다. 다수의 폭정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결국 그윈플렌은 괴물같은 영혼을 가진 왕과 귀족들에게 환멸을 느끼고 자신을 키워준 아버지 우르수스와 사랑하는 데아에게로 되돌아간다. 기형의 모습을 한 청년과 앞을 보지 못하는 소녀의 사랑 이야기는 통속적이지만 순수한 영혼의 교감을 느끼게 한다. 위고는 민중의 계도를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고, 인간에 대한 연민과 애정으로 백성의 권리, 정의와 진리. 이성과 지성이 기형으로 뒤틀린 사회를 신랄하게 풍자했다.

백성의 신임을 저버리면 군주는 설 자리가 없고, 의회 내 다수의 폭정 역시 공화국의 이념과 거리가 멀다고 보았다. 군주가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으로 바뀌었을 뿐 이러한 정신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위고는 낭만주의자였고, 철저한 공화주의자였다.

그윈플렌이 클랜찰리경의 지위를 되찾았을 때 악인 캐릭터인 병마개 제거사 바킬페드로가 이제 떠돌이 생활을 청산하라면서 “어느 한 쪽 운명의 문이 열리면 다른 한 쪽 문이 닫힌다”라 하고, 그윈플렌을 팔아넘긴 이복 형제 데이빗경 앞에서 “희한하지, 다 본래 자리로 되돌아가지 않아”라고 하는 말은 의미심장하다.

몰아치던 폭풍우도 해가 떠오르면 잠잠해지고, 혼돈의 상태도 질서가 자리 잡으면 안정화된다. 현재 계엄 및 탄핵을 거쳐 대선을 앞두고 있다. 경제의 어려움과 관세 전쟁 등의 파고가 있지만 대선을 거쳐 민주공화국의 헌정은 제자리를 찾을 것이다. 뮤지컬을 보는 동안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리고, 모든 것이 본래 자리로 돌아간다는 세상사 이치에 닿는 통찰이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박기준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