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열의 고용노동 이슈(26)]노동개혁, 다시 길을 묻다. 탄핵 이후 한국 노동시장의 과제
2023년 1월, 윤석열 정부는 ‘노동시장 개혁 원년’을 선언하며 대대적인 노동정책 개편을 예고했다. 근로시간 유연화, 직무 중심 임금체계 전환,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가 주요 과제였다. 당시 정부는 급격히 변화하는 글로벌 경제환경 속에서 한국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분명히 했다.
특히 주 단위로 제한된 근로시간 관리 단위를 월, 분기, 반기, 연 단위로 다양화하고, 기업이 직무 및 성과에 따라 임금을 차등 지급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제도적 기반 마련을 추진했다. 정책 방향 자체는 시대적 요구에 부합하는 측면이 있었다. OECD 국가들 역시 디지털 전환, 고령화, 저성장 시대에 맞춰 노동시장 유연성과 보호를 동시에 강화하는 이중 전략을 구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근로시간 제도의 다양화나 직무급 중심 임금체계는 필연적인 과제처럼 보였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의 노동개혁은 사회적 공감대 형성과 합의라는 가장 기본적인 전제를 소홀히 했다. 근로시간 유연화 방안은 연장근로 상한과 노동자 건강권 보호장치 없이 입법을 추진하는 방향으로 설계됐다. 또한 직무급 전환 역시 일방적인 가이드라인 제시에 그쳤고, 노사정 대화는 사실상 단절된 상태였다.
이로 인해 노동계는 정부 정책을 ‘노동권 후퇴’로 규정하고 강력히 반발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을 중심으로 대규모 총파업이 예고되고 실행됐으며, 사회적 갈등은 경제 전반에 긴장을 불러왔다.
결정적으로, 2025년 3월 정부 내부에서 계엄령 선포를 검토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정치적 신뢰 위기가 노동시장 갈등과 맞물리면서, 결국 2025년 4월 헌법재판소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인용했다. 이로써 윤석열 정부가 추진한 노동개혁은 중단됐고, 우리는 노동시장 개혁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탄핵 이후 정부는 노동정책의 전면 재구성이 필요한 상황이 됐다. 노동정책은 속도나 유연성 중심이 아니라, 사회적 대타협을 통한 신뢰 회복을 최우선 과제가 됐다. 과거처럼 정부가 독자적으로 노동개혁을 설계하고 추진하는 방식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노사정위원회 재구성 작업이 시작됐고, 모든 주요 정책은 이해관계자 간 협의와 합의를 전제로 추진돼야 할 것이다.
최근 정부의 근로시간 유연화 정책에 대한 여야 대선후보의 논쟁이 쟁점화 되고 있다. 근로시간 관리 단위의 다양화 자체는 유지하되, 연장근로 총량 제한, 집중근로 방지, 노동자 건강권 보호를 위한 안전장치를 강화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직무급 전환도 노동자 참여와 동의를 전제로 추진 방향을 설정 중에 있다. 또한 플랫폼 종사자, 특수형태근로종사자,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등 기존 제도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취약 노동자 보호를 강화하는 방향의 입법이 준비되고 있다.
노동시장 재편의 방향성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현재로서는 세 가지 주요 시나리오가 논의되고 있다.
첫 번째는 사회적 합의를 기반으로 점진적인 개혁을 추진하는 시나리오이다. 이 경우, 유연성과 보호를 조화시키는 유럽형 ‘유연안정성(flexicurity)’ 모델을 참고하여, 근로시간 제도와 임금체계는 개선하되, 노동자의 고용안정과 건강권을 강화하는 정책이 함께 추진될 것이다.
두 번째는 노동시장 규제 강화 경로이다. 플랫폼 노동자 권리보장, 비정규직 차별 철폐 등 노동자 보호를 중심으로 노동시장 규제가 강화되며, 기업의 유연성 확보는 상대적으로 제한될 가능성이 있다. 세 번째는 노사정 협의 실패로 인한 구조개혁 장기 교착 시나리오이다. 이 경우 노동시장혁이중구조 문제와 고용 불안정성은 오히려 심화될 수 있다.
현재로서는 첫 번째 시나리오, 즉 사회적 대타협을 통한 점진 개혁 경로가 가장 유력하지만, 정치사회적 환경 변화에 따라 다른 경로로 이동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앞으로의 노동정책은 3가지 원칙을 충실히 따라야 한다.
첫째, 모든 정책은 사회적 합의 기반 하에 추진돼야 한다. 정책의 정당성과 지속가능성은 절차적 정당성에서 비롯되며, 일방적 추진은 갈등만을 초래할 뿐이다. 둘째, 노동자 보호와 시장 유연성 간 균형을 철저히 고려해야 한다. 한쪽 극단으로 쏠린 정책은 시장과 기업의 신뢰를 잃거나 노동자의 삶을 위협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셋째, 플랫폼 노동자, 특수고용 종사자 등 새로운 노동형태에 대한 포괄적 보호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변화하는 노동환경에 걸맞은 새로운 권리보장 모델이 절실히 요구된다.
노동시장 개혁은 단순히 제도를 고치는 문제가 아니다. 이는 한국 사회가 성장과 분배, 효율과 형평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다시 설정할 것인가라는 보다 근본적인 과제와 맞닿아 있다.
탄핵이라는 정치적 격변은 노동개혁 실패를 넘어, 개혁의 방식과 철학 자체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우리는 지금 다시 노동개혁의 출발점에 서 있다. 성급한 추진이나 정치적 유불리에 휘둘리는 노동정책이 아니라, 사회적 신뢰 위에 세워진 지속가능한 노동시장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한국 경제의 미래를 지키는 길이자, 이번 정치적 위기가 우리 사회에 남긴 가장 큰 교훈이 될 것이다.
윤동열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 한국생산성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