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치협 100주년을 맞으며
지난 4월 11~13일, 인천 송도 컨벤시아에서 대한치과의사협회(회장 박태근, 이하 치협) 창립 100주년 기념행사가 성황리에 열렸다. 100주년 기념행사의 시작을 알리는 기념식과 개막제는 행사 첫날인 11일 오후 박민수 보건복지부 차관 등 정관계 인사, 그렉채드윅 세계치과의사연맹 회장을 포함한 6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우리나라의 근대적인 치의학은 대한제국 말기와 일제강점기 시기에 서양의학과 함께 도입된 뒤, 1916년 경성의학전문학교(현 서울대학교 치의학대학원 전신)에서 치의학 교육이 시작되었다. 1922년 경성치과의학교가 설립되고, 1925년 조선인 최초의 치과의사 함석태 선생을 중심으로 7명의 경성치과의학교 졸업생들이 한성치과의사회를 설립한 지 100년이 흘렀다.
그동안 국내 치과계는 일제 치하로부터 해방된 후 미군정과 함께 보건의료 체계가 정비되며, 치과의사의 수도 서서히 증가하여 1953년 대한치과의사협회가 창립되고 치과계의 조직적 기반이 마련되었다. 1970·1980년대 경제 성장기와 함께 치과 의료 서비스의 수요도 증가하고, 치과대학 및 치과 병원이 전국적으로 확대되고, 치주, 보철, 교정, 구강악안면외과 등 전문과목 제도도 도입되었다.
1990년대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 치의학은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뤘다.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로 치과 진료의 접근성을 확대해 왔으며, CAD/CAM, 디지털 엑스레이, 3D CT 등 첨단 기술을 사용하는 디지털 치의학을 도입하였고, 치과 임플란트 기술을 빠르게 보급하여 국민 누구나 쉽게 임플란트 시술을 받아 상실치를 수복할 수 있게 하였다.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아동 치과 주치의 제도, 노인 틀니 및 임플란트 보험 적용 등 빠르게 고령화 사회로 접어드는 시대에 발맞춰 제도를 보완, 적용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치과의사들도 자신의 역량을 키우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1990년대 초반만 해도 치과 임플란트의 시술은 드물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새로운 치료법으로 그동안의 치과 치료에 대한 일대 혁신을 가져왔으며 국민의 구강 건강 증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초기에는 거의 모든 임플란트 제품이 수입품이었으나, 곧이어 국내 여러 회사에서 국산 임플란트를 개발, 보급하기 시작하였다.
이제는 한국산 치과용 임플란트 제품을 중국, 일본, 동남아, 인도를 거쳐 치과용 임플란트의 본고장인 유럽과 미국 등 전 세계적으로 수출하고 있다. 손재주가 뛰어난 한국인의 장점을 십분 발휘하여 여러 편리하고 다양한 장비와 기구도 연구 개발하여 전 세계적인 호평을 받고 있다.
서구 최신 치의학을 받아들여 열심히 연구하며 치료 현장에서 시술하여 자료를 쌓고, 국내 학회와 국제 학회에서 꾸준히 활동하며 연구 논문도 높은 국제적 수준에 도달한 결과, 이제는 많은 한국 치과의사들이 해외로 나아가 학술 발표에 참여하며, 외국 치과의사들을 직접 가르치고 기술을 전수하는 지위에 나아가게 됐다.
치협 100주년 기념식에서 박태근 회장은 “1925년 치과의료 불모지인 이 땅에 조선인 치과의사 7명이 한성치과의사회를 창립한 지 100년 만인 현재 대한민국은 세계가 부러워하는 치과의료 선진강국으로 우뚝 섰다. 오늘 우리 치과의사는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의지로 현재의 영광에 머물지 말라는 국민적 성원과 선배 치과의사들의 외침을 결코 잊지않을 것이며. 국민과 치과의사 모두가 행복하고 만족하는 세계 1등 치과 의료를 가꿔가기 위해 새로운 100년 동안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대선을 앞두고 사회가 아직 안정되지 않아 보이는 지금, 다시 한번 치과의사로서 내 역할에 대해 되돌아보게 되고, 앞으로의 100년을 새롭게 준비한다는 각오를 다지게 된다. 우연히 보게 된 근대기의 서예가 성당(惺堂) 김돈희의 부채 글씨가 마음에 와닿는다. ‘큰 본령을 지닌 사람은 당시에는 특별한 점이 보이지 않고, 학문에 민첩한 사람은 평생 만족을 기약하지 않는다. (大本領人 當時不見有奇異處 敏學問者 終身無所爲滿足期)’
손재희 CK치과병원 원장